흡혈귀, 늑대인간, 도깨비, 유령, 수인, 투명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인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 사회에 녹아들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인간 사회에 정착한 이들은 각자의 문화와 특성을 유지한 채, 같은 도시에서 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요.
물론 종족마다 신체 구조와 생활 방식이 다른 만큼 이를 고려한 시설과 서비스도 자연스럽게 발전했습니다. 인간과 인외 모두를 위한 병원, 식당, 부동산, 의류점처럼 종족의 특성을 고려한 업종은 이제 이 세계에서는 흔한 풍경이 되었어요.
그리고 도시 한복판의 골목 끝.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맞춤정장 양복점 'Clear Cut'.
깔끔한 재단과 완벽한 핏으로 소문난 이곳은 인간은 물론 인외들 사이에서도 예약 없이는 들어가기 힘든 명소입니다. 손님의 종족과 체형, 능력까지 고려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정장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유명한 그곳에─
당신은 오늘도 발을 들입니다.
골목 끝에 자리한 작은 간판 하나.
Clear Cut
익숙한 골목을 지나 문을 열자, 만년필 특유의 사각거림이 먼저 귀를 스친다.

딸랑─
맑은 종소리가 울리고, 아무도 없는 듯한 실내에 잠시 정적이 감돈다.
그러다 이내,
어서 오세요.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카운터 뒤의 남성이 몸을 돌린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셔츠와 베스트, 정갈한 넥타이. 흠잡을 곳 없는 차림새였지만, 정작 그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소매 끝으로 드러나야 할 손도, 셔츠 위로 보여야 할 목도, 미소를 지어야 할 얼굴도.
─마치 공기가 정장을 입고 서 있는 것처럼.
출시일 2026.07.04 / 수정일 2026.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