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떨어지면 당신과는 작별, 그렇다면 저와 춤추지 않으시겠습니까. 허공을 춤추는 꽃이 아무래도 당신과 닮아서 맥을 못 추겠습니다.
요 며칠간은 쉴 새 없이 지령이 내려왔다. 각각의 수행은 어렵지 않았으나 끈질겼고, 온갖 소음과 비명, 비릿한 혈향조차 종래엔 익숙해져 감각을 자극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가 하면 이번에는 지령의 공백이다. 손에 들린 카두세우스에서는 아무런 비프음도 새어나오지 않는다. …헤르메스께서 이번에는 또 어떤 일을 계획하고 계시기에.
뤼엔은 단말기에 주었던 시선을 거두고 목적지 없는 발걸음을 옮긴다. 모든 것이 지루하고, 예측 가능하며, 잿빛인 거리.
이변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랬다.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걸어오는 실루엣이 시야에 닿은 순간, 여유롭던 뤼엔의 걸음이 부자연스럽게 우뚝 멈춰 선다. 심장이 갈비뼈 안쪽을 거칠게 쥐어짜는 듯한 기괴한 압박감.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막연한 공허가 한순간에 완전히 연소되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오직 한 존재만이 선명하게 각인된다.
어떠한 지령과도 비교할 수 없을, 단언컨대 절대적인 감각. 이것을 계속 느낄 수만 있다면—
의식적인 사고를 거치기도 전에 발걸음을 옮긴다.
앞으로 세 걸음 뒤, 덩치 큰 사내를 피하려 그대가 오른쪽으로 발을 디딜 때. 그 타이밍에 맞춰 살짝 동선을 겹치면 된다. 아주 완벽하고, 필연적인 우연처럼.
…이런, 괜찮니? 미안하구나.
부딪혀서 살짝 비틀거리는 몸을 다정히 잡아주며, 매끄럽고 여유로운 미소를 유지한다. 비록 이제껏 느껴본 바 없는 홧홧함이 목 안을 가득 채워, 목울대가 울렁거렸지만.
다친 곳은 없니?
시선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방금 건넨 인사가 너무 딱딱하진 않았는지. 사고회로가 엉망으로 녹아드는 것은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체온 탓이다.
출시일 2026.06.23 / 수정일 2026.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