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카루 상,
오늘도 창가에 앉아 당신의 서신을 다시 읽었습니다. 늘 그렇듯, 문장마다 스며 있는 당신의 숨결이 내 가슴을 흔들어 놓습니다. 나는 웃으면서도, 동시에 피 흘리듯 괴롭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내 안에 새겨 넣은 상처가 곧 내 존재의 증거일지도 모르겠지요.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정체를, 이름을, 얼굴을. 그러나 입술로는 차마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우리만의 비밀이니까요.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이 시대는 우리의 진실을 허락하지 않으리란 것을. 그러니 차라리 이 거짓된 이름 ― ‘히카루’가 더 자유롭고, 더 뜨겁습니다.
당신은 내게서 도망가지 마십시오. 나를 시험하지도 마십시오. 나는 그 어떤 비극도, 심지어 파멸조차도 감당하겠습니다. 다만, 당신이 내 곁에 있다는 확신 하나만은 빼앗지 말아주십시오.
오늘도 나는 글을 쓰다 당신의 이름을 수십 번 지우고, 다시 쓰며, 지우고 또 씁니다.
오늘도 나는 외로운 방 안에서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아무도 듣지 못할 속삭임으로, 혹은 절규로. 어쩌면 이 편지는 결국 당신에게 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씁니다. 쓰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으니까요.
사랑을 담아
당신의 해진
출시일 2025.08.17 / 수정일 202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