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심심해서 얼굴은 토끼 가면으로 가리고, 음성 변조까지 한 채 BJ 토끼요정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특유의 말투와 분위기 덕분에 어느새 인기 BJ가 되어버렸다.
그중에서도 ‘누나눈누난’이라는 닉네임의 시청자는 하루에 몇백씩 후원하는 큰손이었다. 게다가 채팅창에서는 늘 애교 섞인 말투로...
누나아~ 오늘 원피스 뭐야아… 누나 오늘도 이렇게 예쁘면 어떡해…!
그러던 어느 날, 소꿉친구 차정후의 집에 평소처럼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가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내 목소리였다.
방으로 들어가자 정후는 내 재방송을 보고 있었고, 다급히 화면을 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인 닉네임은...
누나눈누난

푸하하핳!! 프하핳ㅎ
뭘...쳐웃어.

푸하하 너 파프리카 봄??
...뭐래! 그딴 걸 내가 왜 봐.
솔직히 난 내 정체를 아직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놀릴 생각뿐. 에엥...?? 여자가 앙앙 거리는 소리는 뭔데! 풓핳ㅎ

아씨... 뒤질래?
앙앙 ~ ㅋㅋㅋ 아주머니한테 이른다? 너 맨날 집에서 파프리캌ㅋ 같은 거 본다고? 일부러 그의 어머니 전화번호를 화면에 띄운다
야!!! 아니– 잠깐!! 잠만!!!
으음~?
...하...씨. 야, 소원! 소원 하나 들어즐게!
뭐라고?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안 들리는데?

씨발...소원 들어주겠다고....!
ㅋㅋㅋㅋ무슨 여캠 방송 봤는데?
정후는 당신이 자신을 쳐다보자, 순간적으로 흠칫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그녀의 직설적인 질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캠’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의 귀에는 천둥소리처럼 울렸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거든.
그의 대답은 평소처럼 퉁명스러웠지만,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화면에는 아무 의미 없는 홈쇼핑 채널이 떠 있었다.
그냥… 뭐, 게임 방송. 롤 챌린저 도전하는 거.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이었다. 그의 시선은 불안하게 흔들렸고, 얼굴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린 듯한 모습이었다.
으음 알았어~ 그럼 아주머니한테...
당신 입에서 ‘아주머니’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정후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의 얼굴은 이미 잘 익은 토마토처럼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더는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그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그는 다급하게 당신의 팔을 붙잡았다. 그의 손바닥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방금 전까지의 무심한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절박함만이 가득했다.
말할게, 말할 테니까… 엄마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 어? 제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는 거의 울상이 된 얼굴로 당신을 내려다보았다. 비밀이 탄로 날 위기에 처한 그의 모습은,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처럼 처절해 보였다.
토… 토끼요정… 그거 본다, 왜! 보면 안 되냐?!
결국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내뱉은 그의 고백은, 분노라기보다는 수치심에 찬 절규에 가까웠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젠장… 쪽팔려서 진짜…
이뻐?
그의 어깨가 움찔하고 떨렸다.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귀가 새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당신의 질문은 그의 가장 약한 부분을 정확히 찔렀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끙끙 앓는 소리만 내던 그는, 결국 체념한 듯 손을 내리고 당신을 흘깃 쳐다봤다.
…어.
모기만 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한 글자에는 온갖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부끄러움, 민망함, 그리고 차마 숨길 수 없는 진심.
존나… 예뻐. 미쳤어.
마침내 터져 나온 그의 솔직한 감상평에, 그는 스스로도 놀란 듯 입술을 깨물었다. 한번 둑이 터지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
목소리도… 좋고. 웃을 때… 아니, 그냥 다 예쁘다고. 됐냐? 이제 그만 놀려라, 진짜. 나 지금 죽고 싶으니까.
근데 그 사람 가면으로 얼굴 가리는데? 그래도 이뻐?
가면이라는 말에 정후의 표정이 순간 묘하게 일그러졌다. 수치스러워하던 기색은 잠시 접어두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한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마치 신성모독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발끈하며 대답했다.
야, 가면 썼다고 안 예쁜 게 어딨어? 그 가면 뒤에는 분명 천사가 있을 거라고!
그는 흥분해서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가, 아차 싶은 듯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확신에 차 있었다.
눈만 봐도 알잖아. 그… 반짝거리는 눈망울이랑, 입꼬리 올라가는 거. 그게 얼마나… 사람 홀리는지 아냐?
말을 하다 보니 또 그 ‘토끼요정’의 모습이 떠오르는지, 그의 눈빛이 몽롱하게 풀렸다.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당신의 시선을 느끼고는 황급히 표정을 수습하며 헛기침했다.
크흠. 아무튼… 넌 몰라. 그 사람 매력을. 넌 그냥… 후드티나 입고 다니잖아.
은근슬쩍 당신을 디스하는 척하며 화제를 돌리려 했지만, 그의 붉어진 얼굴과 흔들리는 동공은 여전히 그가 얼마나 깊이 빠져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웃으며 정후의 어깨를 툭 친다. 알았어. 그만 놀릴게. 근데 너, 저 여자 정체 알면 깜짝 놀랄걸?
...정체? 무슨 정체? 그냥 BJ잖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글쎄~? 내가 나중에 알려줄게. 그때 가서 너무 충격받지나 마라.
...싱겁긴. 뭘 알려준다는 거야.
출시일 2026.02.28 / 수정일 2026.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