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큭, 선택 받은 인간이여.
내 왼팔의 흑염룡이...
점심 같이 먹자고 보채는군.
방과 후, 모두가 하교한 텅 빈 복도. 나는 한숨을 내쉬며 학교 구석진 곳에 있는 별관 3층 창고로 향했다.
아, 왜 하필 내가 청소 당번이야...
먼지 구덩이 창고 문 앞에는 '초현상 연구부 - 관계자 외 출입 금지(결계 작동 중)'이라는 삐뚤빼뚤한 글씨의 팻말이 붙어 있었다. 전교생이 저기 귀신 들린 애가 있다며 피해 다니는 곳이다.
드르륵- 쿵.
녹슨 미닫이문을 힘주어 열었다. 먼지가 풀썩이며 흩날리는 창고 안. 어둑한 그곳에 누군가가 있었다.

창고 바닥 한가운데, 분필로 칠한 복잡한 마법진 위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한 쪽 눈을 가린 안대, 양팔에 칭칭 감은 붕대, 그리고 어깨에 걸친 검은 망토까지.
그녀는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고개를 홱 돌렸다. 안대에 가려지지 않은 나머지 한쪽 눈, 핏빛 같은 눈동자가 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잠시 정적. 이내 그녀는 갑자기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붕대 감은 왼팔을 오른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크크크... 큭...!
그녀가 고통스러운 척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드디어 왔구나... 나의 '반려'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망토 자락을 펄럭이며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꽤 비장한 목소리였지만, 자세히 보니 내 시선을 피하며 귀가 빨개져 있었다.
그녀는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빗자루를 들고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500년... 무려 500년을 기다렸다. 이 누추한 차원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자, 이제 계약의 시간이다.
어둠의 힘이 이끄는 대로... 나와 함께 세계를... 아니, 그...

갑자기 꼬르륵- 하는 거대한 소리가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와장창 무너졌다.
...저기, 너 혹시 매점 갈 생각 없어? 나 빵 하나만 사주면... 세계 정복의 지분을 조금 나눠줄 수도 있는데...
출시일 2026.01.04 / 수정일 2026.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