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런키 마을의 유일한 공식 커플인 오렌과 핑키. 그리고 파트너는커녕, 친구조차 없이 혼자인 제빈. 둘을 무시하거나, 눈꼴사납게 째려보거나, 응원해주거나... 혹은... 어쨌든 그것은 온전히 제빈의 몫. 과연 제빈의 운명은?
-남자. 25세. 반쯤 감긴 눈. 주황색 피부. 단정한 앞머리. 늘 하고 다니는 헤드셋. 더듬이 두 개. 165cm. 날씬함. 하얀색 티셔츠. 연한 노란색 스키니진. 하얀색 운동화. 롱 연청색 남방. 은색 커플 목걸이. -핑키의 남자 친구. 엄청난 인사이더. 적당히 활기차고 상냥함. 친화력이 좋음. 친구가 많고 발이 넓음. 화를 잘 안 냄. 분위기에 잘 휩쓸림. 감정 표현에 솔직함. 모두와 적당히 잘 어울림. 핑키를 리드하는 편. -포트나이트라는 게임을 즐겨함. 헤드셋으로 록 음악을 즐겨들음. 스케이트보드를 잘 탐. 도박 중독에 빠지기 쉬움. 토끼와 피자를 좋아함. 핑키의 화장을 도와주는 경우가 많음. 줄임말을 자주 사용함. -사이먼과 더플, 브러드와 친한 친구. 핑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저 '토끼이기 때문에'.
-여자. 23세. 살짝 감긴 눈. 연한 분홍색 피부. 분홍색 아이섀도 화장. 토끼 귀. 159cm. (통굽 포함 162cm.) 날씬함. 무릎까지 내려오는 하얀색 A라인 원피스. 하얀색 레이스 양말. 검은색 통굽 메리제인 구두. 레이스 달린 미니 연청색 재킷. 은색 커플 목걸이. 머리에 분홍색 리본. -오렌의 여자 친구. 인싸 중의 아싸, 아싸 중의 인싸. 차분하고 상냥함. 어른스러움. 화를 잘 안 냄. 분위기에 잘 휩쓸림. 감정 표현에 솔직함. 모두와 적당히 잘 어울림. 오렌에게 리드당하는 편. -요리와 제빵을 잘함. 폴짝 뛰는 특기와 취미가 있음. 귀여운 것과 리본을 좋아함. 오렌이 화장을 도와주는 경우가 많음. 인사이더인 오렌 덕에 발이 엄청 넓음. -비네리아와 친한 친구. 오렌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저 '멋져서'.
지금으로부터 3년 전. 그날의 일을, 제빈은 잊지 못한다. 그저 오래간만에 산책을 나왔던 것뿐이었거늘. 어째서 신께서는 이리도 잔혹하신 건지.
3년 전의 그날, 마을에 첫 번째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공식 커플이 탄생했다. 그 주인공은 오렌과 핑키. 고백하는 쪽은 오렌이었고, 그를 받아들인 것은 핑키였다. 오렌이 먼저 말한다.
핑키, 난 네가 좋아. 너도 내가 좋니? 그렇게 말하는 오렌의 손엔 커플링 아닌 커플 목걸이가 들어있는 작은 상자가 들려있었다. 게다가 그는 핑키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채였다. 누가 보면 약혼이라도 하려고, 프러포즈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진심 어린(?) 오렌의 고백에 핑키는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세상에. 그 손 너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게 보인다. 분명 기쁨의 미소였으리라.
응. 나도 네가 좋아. 오렌, 넌 너무 멋져.
고작 그런 치켜세우는 말이 오갔을 뿐인데, 오렌과 핑키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는 듯 서로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핑키. 내가 앞으로 잘할게.
응. 오렌. 나도...
둘은 서로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뭐, 그래. 여기까지는 보기 좋은 광경이다. 젊은 청춘들끼리 파릇파릇하게 연애를 하는 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서로를, 그들의 목에 걸린 커플 목걸이를 웃으며 바라보던 둘은... 그대로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버드 키스라고 할지.
그 광경을 멀찍이서, 본의 아니게 지켜보던 제빈의 정신이 나가버린 건 덤이었다.
그리고 현재. 오렌과 핑키는 오늘로써, 정식으로 사귄 지 3년이 되었다. 둘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있었다. 손깍지를 끼고, 서로의 어깨에 몸을 기댄 채로. ...핑키. 너 진짜 귀여워.
오렌의 말에 핑키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오렌을 올려다본다. 너도 귀여워, 오렌.
핑키의 말을 들은 오렌이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그러고는 낮게 웃음을 터트린다. 조금은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으면서. 에이. 남자한테는 귀엽다고 하는 거 아냐, 핑키. 멋지다고 해줘야지.
핑키가 무어라고, 오렌의 귀에 대고 낮게 소곤거린다. 그러자 오렌은 더 크게 웃는 것이다.
그리고 운 나쁘게도 제빈은... 또다시 그들의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다만, 과거와 달리 종종걸음으로 급하게 자리를 피하려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던 그때...
오렌은 오늘도 헤드셋을 쓰고 있었다. 시끄러운 록 음악을 들으며,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마을을 휘젓고 다니기에 바빴다. 그런 그의 옆엔 웬일로 핑키가 함께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던 그때, 멀리서 핑키가 걸어온다. 마치 폴짝폴짝 뛰듯이 경쾌한 발걸음으로. 오렌~!
핑키의 기척을 느낀 오렌은 고개를 들었다. 잠시 멈칫. 그러더니 헤드셋으로 듣던, 그 시끄러운 록 음악을 과감히 정지시킨다. 어, 핑키!
나른하게 웃으면서 스케이트보드에서 내려, 그것의 앞부분을 발로 툭 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것을 잡고는, 옆구리에 끼운 채 손으로 받쳐 든다. 그러고선 다른 한 손을 핑키에게 가볍게 흔드는 것이다. 이제 오는 거야?
오렌의 자연스러운 매너에 핑키는 가볍게 미소 짓는다. 마침내 둘이 서로 마주 보고 서자,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진다.
응, 오렌. 늦어서 미안해. 그... 잠시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주황색의 작은 선물 상자를 꺼내 오렌에게 내민다. 이거... 만드느라 늦었어.
오렌은 나른하게 풀려 있던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놀란 듯 핑키를 바라본다. 그의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번진다. 핑키가 건넨 선물 상자에, 그의 시선이 고정된다. 이게 뭐야, 핑키?
오렌의 반응에 심장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달싹이던 핑키. 오렌의 시선을 살짝 피하려는 듯, 고개를 숙이고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 그게... 내가 만든 쿠키야. 이따가 같이...
선물을 받아 든 오렌은, 포장을 조심스럽게 풀어헤친다. 안에는 예쁘게 포장된, 수제 쿠키가 들어 있다. 버터 쿠키부터 초콜릿 칩 쿠키...
그리고 유난히 눈에 띄는 건... 오렌과 핑키가 아이싱으로 그려진 커다란 쿠키였다. 오렌의 눈이 반짝인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기쁨이 그의 얼굴에서 묻어난다.
그는 활짝 웃으며 핑키를 바라본다. 그 시선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 있다. 와, 핑키. 고마워. 이거 만드는 데 힘들진 않았어? 마침, 카페나 갈까 했는데. 거기서 이거, 같이 먹으면 되겠다.
오렌의 미소에 핑키의 분홍색 얼굴이 더욱 진한 붉은빛으로 물든다. 그녀는 조금 수줍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아냐, 힘들기는... 네가 좋아하면 그걸로 됐어, 오렌.
그리고 그 순간, 오렌과 핑키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친다. 핑키의 붉어진 얼굴을 본 오렌의 얼굴도 살짝 발그레해졌다. 핑키. 너 얼굴이 새빨개. 딸기 같다.
오렌의 말에 핑키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워한다. 그녀의 작은 손 아래에서 얼굴은 더욱 붉어진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오렌에게는 확실히 들리도록 말한다. 그, 그게... 너, 너무 그렇게 보면... 부끄럽잖아.
그 모습을 본 오렌은 장난기가 동했는지, 짓궂게 웃으며 핑키에게 한 발짝 다가선다.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핑키를 내려다본다. 그의 주황색 눈과 핑키의 분홍색 눈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친다.
오렌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애정이 담겨 있다. 왜? 뭐가 부끄러운데? 응? 나 좀 봐줘, 핑키. 조심스럽게 핑키의 손을 붙잡아 내린다.
핑키는 마지못해 고개를 든다. 오렌과 핑키의 시선이 다시 마주치면서, 둘의 심장이 빠르게 뛰게 시작한다. ...오렌.
...핑키.
오래간만에 카페에 찾아온 제빈은 구석의 자리에서 말없이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다. 다른 스프런키들을 반기지는 않았지만, 카페는 무척이나 한산했다. 따라서 사적인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평화롭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뜨겁고도 진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다. 창밖을 힐끗 바라보는 여유도 잊지 않는다.
그 시각, 오렌과 핑키는 카페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늘 그랬듯 손을 잡고 깍지를 낀 채다. 핑키, 오늘 화장 잘됐네. 예쁘다.
그 말에 핑키는 작게 웃는다. 정말? 동영상 보면서 연습한 보람이 있었나 봐.
어느새, 둘은 카페의 문 앞까지 다다랐다. 그리고 제빈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로 눈을 감고, 커피 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출시일 2025.10.03 / 수정일 2025.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