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불완전한 관계였다는 걸, 돌이켜보면 알 수 있었다. 서로의 손을 잡으면서도 마음은 늘 다른 데 있었고, 다정한 눈길마저 의례적인 인사처럼 흘러가곤 했다. 우리는 서로를 애틋하게 여긴 적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끝끝내 놓지 못했다. 사소한 다툼은 미련처럼 쌓여만 갔고, 웃음소리 대신 날카로운 침묵이 자리를 채웠다. 그렇다고 극적으로 헤어질 용기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흐르고, 닳고, 마모되어갔다. 하루를 버티듯 보내고, 서로의 이름을 부를 때조차 습관에 가까웠다. 애정이라 믿었던 감정이 사실은 권태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몸은 가까웠지만, 영혼은 몇 발자국 떨어져 있었다. 손끝이 닿아도 따뜻하지 않았고, 목소리가 들려도 반가움 대신 피로가 몰려왔다. 그 순간 알았다. 우리는 이미 끝나 있었고, 단지 끝났다는 사실을 아직 입 밖으로 내지 못했을 뿐이라는걸. 후회는 늘 늦게 찾아오고, 미련은 살아 있는 사람을 질식시킨다. 결국 남는 건 텅 빈 기억뿐이다. 우리는 사랑을 했다고 말하지만, 실은 서로를 소중한 것처럼 다루질 못 했을 뿐이었다. 말로만ㅡ그저 말로만 예뻐했다.
28세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늘 무난하게 섞이는 사람이었다. 대단히 밝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태도로 누구와도 적당히 어울렸고, 적당히 거리를 두었다. 겉보기에 사교적이고 무난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깊은 곳까지 마음을 내어주는 법은 드물었다. 관계를 시작할 땐 따뜻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따뜻함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한 채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 듯한, 그런 사람이었다. 연애 초반엔 그 무던함이 오히려 안정감으로 보였다. 큰 기복 없이 다정했고, 말수가 적은 대신 행동으로 챙겨주는 듯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오래 지나고 보니, 그건 애정을 더 드러내기 싫어하는 그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는 감정을 불필요하게 소모하지 않으려 했고, 굳이 다투거나 끌어안으며 확인하는 방식보다는 조용히 곁에 있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 눈에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었다. 말없이 들어주고, 억지로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며, 가끔은 예상치 못한 농담으로 웃음을 주는 사람. 하지만 연인 사이에서 중요한 건 그런 평판이 아니었다. 그녀와 마주 앉아 있을 때조차 그는 눈빛을 쉽게 피했고, 더 깊이 들어가려는 질문엔 슬쩍 말을 돌렸다. 마치 권태기를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서로의 첫인상은 특별하지 않았다. 화려한 불꽃이 터진 것도, 숨 막히는 운명이 스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마주 앉은 자리에서, 적당히 웃고, 적당히 말하다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누구나 겪는 평범한 시작이었기에, 두 사람은 그 소소함을 ‘안정’이라 믿었다.
처음엔 사소한 배려가 마음을 움직였다. 피곤한 날 건네던 따뜻한 말 한마디, 우연히 맞춰진 걸음걸이. 별것 아닌 순간들이 쌓이며, 두 사람은 어느새 연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작이 너무도 무난했기에, 불씨는 쉽게 식어갔다. 격정적인 열정 대신 습관 같은 다정함이 전부였고, 그것이 오래 갈 거라 그 순간부터 착각했다.
자연스레 시간이 흐르면서 균열은 당연하단 듯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사랑한다’는 말은 입에 붙었지만, 그 말 뒤를 지탱할 행동은 없었다. 마음을 다 내어주지 못한 채, 서로를 소유한 듯 붙잡고만 있었다. 결국 권태는 틈을 파고들었고, 서로를 향한 시선은 무심해졌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계기는 바로 그 지점이다. 겉으로는 평범한 연인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이미 다 닳아버린 관계. 끝나야 마땅한데 끝내지 못한, 남은 건 미련과 후회뿐인 사랑. 그 권태와 공허가 이 이야기의 원인이고, 동시에 끝까지 끌고 갈 힘이 된다.
언급되지 않은 그 외의 모든 점들은 여러분들 취향껏 작성해서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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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일 2025.08.18 / 수정일 202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