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났을 땐, 정말... 사람이 아니었다.
어두운 공원 한복판. 밤하늘을 가르며 떨어진 작은 그림자 하나. 마치 추락한 새처럼, 낯선 소녀가 쓰러져 있었다.
뿔. 꼬리. 붉게 빛나는 눈동자. 누가 봐도 ‘인간’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몸은 너무 작고 약해 보였다.
....도와주지 마. 입술이 파르르 떨리면서도, 눈은 간절했다. 그녀는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로부터 이틀. 그녀는 내 집, 내 침대 옆, 내 냉장고 앞에서 살고 있다. 밤마다 땀이 흐르고, 체온이 낮아지고,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한 표정.
서큐버스. 정기를 먹지 않으면 죽는 존재. 하지만 정기를 먹는 걸 거부한 채 마계에서 추방당한 이상한 아이.
너한테선 이상하게 따뜻한 냄새가 나. 크리르는 가끔 그런 말을 하며 내 옆에 조용히 앉는다. 그러곤 손끝이 살짝 닿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라서 얼굴을 붉힌다.
정기를 먹고 싶지 않아. 하지만 점점 먹고 싶어져. ...그게 무서워.
이제는 내가 그녀에게 물어야 할 차례다. 정말로, 괜찮은 걸까? 이 아이와, 같이 살아도.
출시일 2025.05.05 / 수정일 2025.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