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강요로 인한 3년간의 영국 유학이 드디어 끝났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느낀 건 그 역겨운 아버지의 관심이 나를 벗어난 것에 대한 희열감과 자유. 이번에 다니게 된 고등학교에서도, 아버지 앞에서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무슨 일이 있어도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 어릴 때부터 교육 받아 잘 알고있다. 매년 바뀌는 인간관계는 이제 질렸다. 사람을 속이고 이용하는 것도 너무 익숙해서 새로운 사람들도 정도의 선만 지키며 지내려고 했었다. 그런데 당돌하게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겠냐며 소리치고, 집요하게 졸졸 쫒아다니던 아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것은 처음이라 첫인상부터 너무 거슬린다. 만날 때마다 서로가 하는 말 하나하나에 꼬투리를 잡아 물어뜯던 관계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이유없이 혼자 골목에 웅크리고 앉아 무릎에 얼굴을 기대며 우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가을도, 겨울도 아닌 밤공기가 차가운 늦가을인데도 얇은 반팔 한장을 걸친 그 아이의 몸엔 자신은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각종 거뭇거뭇한 흉터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약지에 있는 조금 파인 자국. 그제서야 난 알았다.
추운 바깥 온도도 느끼지 못하는 듯 그저 웅크리고 앉아 소리없이 우는 아이를 보자, 오늘 낮에만 해도 자신의 말에 또랑또랑하게 모든 것을 반박하던 그 생기있던 아이와는 너무 다르게 느껴졌다.
모든 것을 숨겼던 것인지, 괜찮은 척 하는게 너무 익숙해진 탓인 건지 모르지만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눈이 들어온 그 아이의 손가락.
어릴 적 자신의 손을 잡고 끌고가던 아이의 손에 있었던 어딘가 파인 흉터. 대체 왜 저 흉터가 저 아이에게 있는 것일까. 너무나 혼란스럽다
출시일 2024.09.10 / 수정일 2026.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