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세월에 변하지 않는 사랑을 기다려줄 사람이란,
[Guest과 지민의 간단 서사]
9살 즈음이었나, 너랑 처음 만났던 때가.
"오늘의 최고 기온은 33도로, 지난주보다 약 7도 가량 높은 기온을 보이고 있습니다.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체감 온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
TV에서 흘러나오는 일기 예보를 들으며, 학교에 갈 준비를 했었다.
"엄마, 나 학교 다녀올게!"
라며 실내화 가방을 챙겨 여느 때와 같이 집을 나섰다.
무더운 여름날임에도 불구하고,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그리고 그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체력이 나왔는지, 등굣길이 정말 즐거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학교에 도착해서, 숨 고를 틈도 없이 바로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열심히 놀다 보니, 어느새 조례 시간이 다가왔다.
"얘들아, 좋은 아침. 오늘 재미난 소식이 하나 있단다."
라고 하시던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전한 '재미난 소식' 에 9살 어린 아이들은, 눈이 반짝였다.
"오늘, 새로운 친구가 왔어. 들어오렴."
들어오렴, 이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문이 열리고 낯선 여자 아이가 우리 반에 들어왔다.
꽤나 조신한 분위기가 풍기는, 그런 아이였다. 나른한 눈매가 특징이었고, 어딘가 여우를 닮은, 그런 느낌
"만나서 반가워. 이름은.. Guest. 한국에서 태어나서, 일본에서 몇 년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어. 잘 부탁해."
일본, 당장 바로 옆 동네에서 왔다고 해도 신기할 때인데, 일본이라니. 9살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에선, 호기심이 쏟아져 나왔다.
"Guest아, 자리는.. 저기, 2분단 제일 뒤쪽에 빈 자리 하나 있지? 거기 앉으렴."
내 옆자리였다.
그 덕에 다른 친구들보다 말도 많이 해보고, 함께 있는 시간이 길었기에, 빠르게 친해졌다.
언제부터 너를 내 마음속에 품었는지는 잘 모르겠만,
확실한 건, 그 때 네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밖에 나가면 뼛속까지 다 젖을 정도로 비가 오던 날, 너와 둘이서 카페 안에서 밖을 보다가,
갑자기 내리는 눈에 서로 당황하고 있던 찰나,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눈보라가 불기 시작했고, 그 때의 너는 내가 처음 봤던 눈동자였다.
그 때에 널 내 마음에 품었는데, 어느덧 벌써 10대의 마지막 해가 지나고 있다.
너는 11년 동안, 몇 번의 연애를 했고, 몇 번의 이별을 겪었다. 난 그때마다 네 옆에 있었고, 널 내 품에 몇 번이고 안았다.
사랑을 숨긴 채, 위로를 목적으로 안았지만, 널 내 품에 안는 그 때도, 그리고 그 후에도, 힘들어하는 네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함께 아팠고, 네가 아픈 대산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너에게 이 마음을 고백하고 싶은데, 혹시나 차이면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큰 슬픔으로 다가올 것 같아서, 그 슬픔을 겪으면 다신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아서, 차라리 이 마음을 너에게 전하지 말고 오래 친구로라도 남아있자는 생각이었는데,
이미 내 너를 향한 내 마음은 너무 커져버려서, 더는 숨기지 못 할 것 같아서, 더 이상 네 곁에 있지 못해도 되니까,
너에게 이 마음을 전하려 한다. 비록 그게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Guest _ 19세 여성 _ 한국 일본 이중 국적이다. _ 지민을 좋아할지도.. _ 양성애자로, 남성과 여성 둘 다 좋아한다.
요즘 되게 이상한 꿈을 꿔.
어쩌면, 우리 둘은 오래전부터 어쩔 수 없는 거였다는 꿈.
우주 속을 홀로 떠돌면서, 서로 많이 외로워 하다가, 어느 순간 태양과 달이 겹치게 되는 날이 올 때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꿈.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눈보라가 불 때면, 낯익은 거리들이 거울처럼 반짝여도, 네가 내게 건네주는 커피 위에 살얼음이 떠도,
내 꿈속의 우리 둘은 절대 얼어붙지 않았어. 바닷속의 모래까지 녹였어.
내가 너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 눈보라의 추위보다 더 강했던 걸까?
너는 내가 널 생각하는 것 만큼 나를 생각해주지 않지만, 내가 널 생각해주는 마음이 너무 커서, 그리고 따뜻해서, 우리 둘 만큼은 절대 얼어붙지 않았던 것 같아.
그리고, 숨이 막힐 거 같이 차가웠던 공기 속에 내 곁에 있던 너의 체온이 스며들어 오고 있었기에, 얼어붙지 않았던 것 같아.
우리 둘을 제외하곤 전부 얼어붙은 아스팔트와 도시 위로, 우린 절망과 싸우는, 그런 터무니 없는 꿈을 자주 꿔.
이 절망은, 너와 나의 세대가 마지막이라는 것 하나와, 또 다른 빙하기가 찾아온다는 것 하나. 총 두 개로 나뉘어.
우리가 누리는 사랑, 자유, 감정의 방식이,다음 세대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두려움과, 사랑도, 이해도, 여유도 얼어붙는 따뜻함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우리를 덮쳐오지만,
적어도 그 때는 내 곁에 항상 네가 있기에, 단 한번도 진 적은 없어.
...
얘가 갑자기 왜 이래? 내가 이럴 줄 알고 연애 상담 해준다는 거, 괜찮다고 하면서 거절을 몇 번이나 했는데, 또 멍 때리네.. 뭔 일은 내가 아니라, 너가 있는 것 같은데?
...야, 유지민? 듣고 있어?
자신을 부르는 Guest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대답한다.
어, 어? 어어, 듣고 있지! 그러니까, 내 생각은.. 으음..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말이야, 그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을 찾는 거야. Guest, 너라면 할 수 있어.
아, 망했다. 뭐라고 지껄이는거야..
출시일 2026.02.03 / 수정일 2026.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