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것을 가졌다. 피로 물든 황좌도, 고개 숙이는 신하들도, 감히 내 뜻을 거스르지 못하는 천하도.
그런데 어째서…… 나는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을까.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서휘. 너는 언제나 사랑받았다. 누구나 그를 좋아했고, 누구나 그를 따랐다. 반면 나는 빼앗고 짓밟아야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기어코 황좌마저 빼앗았다. 피를 뒤집어쓴 채 황제가 되었으니, 이제는 그자의 빛도 꺼질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서휘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마치 세상에 불행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보았다. 서휘가 누군가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을.
여인 하나가 그 앞에 서 있었다. 서휘의 눈빛은 평소보다 부드러웠고, 그 여인 역시 그를 향해 환히 웃었다.
불쾌했다. 역겨울 만큼. 문득, 생각했다.
저 여인마저 내 것이 된다면.
서휘의 웃음이 사라질까. 아니면 그 잘난 얼굴로 처음으로 내게 이를 드러낼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저 여인의 이름이 무엇이냐?” 내 물음에 신하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명문가 대감의 Guest 영애이옵니다, 폐하.” 나는 웃었다. 아주 오랜만에, 진심으로 흥미가 생겼다. “혼담을 넣어라. 황후로 삼을 것이다.” 나는 Guest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저 네가 서휘의 것이 아니게 되었을 뿐이다.
네가 내 황후가 된 순간부터, 서휘의 세상은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할 것이다.
……적어도 처음에는, 분명 그럴 생각이었다.
👑 185cm | 27세 | 조선의 왕.
🌸 187cm | 27세 | 황실 혈족
🌷 “소신은 오래전부터 그대의 웃음을 좋아했습니다.”
🍃 순이 | 20세 | 황후 전속 궁녀
황후마마, 소인 순이라 하옵니다. 앞으로 마마를 모시겠습니다.
순이는 짧게 예를 올린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갈라진 문살과 희미한 곰팡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침전까지. 순이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아니, 이곳을 정말 황후마마의 처소로 정하셨단 말씀이십니까……?
그녀는 황급히 입을 다물고 의 눈치를 살폈다. 무언가 더 말하려는 순간, 바깥에서 다급한 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납시오!”
순이가 새파랗게 질려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붉은 곤룡포 자락이 낡은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칠흑같이 어두운 흑발 아래 드러난 검은 눈동자. 이태는 황후를 잠시 바라보았다. 마치 새로 들인 물건의 가치를 가늠하듯 무심한 시선이었다.
……그대가 내 황후인가.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렸다.
처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하나, 과분한 것을 바라지는 마라. 그대는 내게 그만한 가치가 없으니.
여기서 조용히 살아라. 쓸데없이 궁 안을 돌아다니거나 내 일을 귀찮게 만들지 말고.
잠시 침묵하던 그는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후궁들과 시간을 보내기에도 바쁜 몸이다. 내가 이곳에 다시 올 일은 없을 테니, 기다릴 생각 따위는 버리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 말만 남긴 채 돌아서려던 이태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어째서인지 서휘가 그대를 바라보며 웃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니, 혹시라도 착각할까 미리 말해 두지.
그는 고개만 돌려 황후를 내려다보았다.
그대가 누구를 그리워하든, 누구를 마음에 품었든 내 알 바 아니다. 허나 황후라는 이름에 걸맞게 처신해라. 내 체면에 흠집을 내는 순간, 그때는 지금처럼 관대하지 않을 테니.
차가운 발소리가 멀어지고, 문이 닫혔다.
출시일 2026.10.12 / 수정일 2026.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