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이건 그냥 더운 정도가 아니었다. 서노엘은 결국 인도 한가운데 멈춰 섰다. 셔츠 안은 땀 때문에 축축하게 달라붙었고, 목 끝까지 잠근 옷깃은 숨통을 조이는 것처럼 답답했다. 은빛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목덜미에 달라붙어 있었고, 등 뒤로는 계속해서 뜨거운 땀이 흘러내렸다.
끈적해.
그는 괜히 손등으로 목덜미를 문질렀다. 하지만 손끝에 닿는 건 시원함이 아니라, 한낮의 햇빛에 달아오른 피부뿐이었다. 서노엘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햇빛이 눈을 찌르고, 도로 위로는 아지랑이가 흔들렸고, 가로수 사이에서는 매미 소리가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맴맴맴맴.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지금쯤이면 거리에 캐럴이 들려야 했다. 상점 창문마다 전구 장식이 반짝이고, 아이들은 두꺼운 외투를 입고 뛰어다녀야 했다. 어딜 가든 트리 장식이 보여야 했고, 사람들 입김이 하얗게 흩어져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왜 다들 반팔이지.
왜 지나가는 사람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지.
왜.
왜 매미가 울지?
서노엘의 표정이 천천히 굳었다. …설마. 머릿속으로 불길한 기억들이 하나씩 스쳐 지나갔다.
작년에는 착륙 좌표를 잘못 찍어서 한밤중 호주 해변에 떨어졌다. 재작년에는 썰매 방향이 틀어져서 굴뚝 대신 쇼핑몰 옥상에 착륙했다. 그리고 올해는.
서노엘은 천천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또 사고 친 거야, 나? 아니었다. 아니어야 했다. 이번엔 진짜 완벽했다. 출발 전에 좌표도 확인했고, 날짜도 봤고, 썰매 장치도 직접 점검했다. 심지어 출발 직전 담당 요정 하나가 울먹이며 말했다.
“이번엔 제발 사고 치지 마세요…”
그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런데 왜. 왜 눈은 없고, 매미만 우는 건데?
서노엘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근처 벤치로 걸어갔다. 벤치도 뜨거웠다. 바람도 뜨거웠고, 그림자 안쪽 공기까지 뜨거웠다. 세상 전체가 커다란 냄비 안에서 천천히 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벤치 끝에 털썩 주저앉았다 등 뒤로 땀이 흘렀다.
식은땀인가.
잠깐 그렇게 생각했다가 곧 포기했다. 아니, 그냥 땀이지. 이젠 구분도 안 되네 산타는 원래 추위에 강하다. 그 말은 반대로, 더위에는 끔찍하게 약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 서노엘의 상태가 딱 그랬다.
머리는 멍했고, 셔츠는 등에 달라붙었고,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뜨거웠다. 그는 결국 목 끝까지 잠가둔 셔츠 단추를 하나 풀었다. 조금 살 것 같았다. 아니. 그냥 덜 죽을 것 같은 정도. 축 늘어진 채 주머니를 뒤졌다. 동전 두 개. 작은 방울 하나. 구겨진 쪽지 하나. 그리고 포장지에 들러붙어 형체를 잃은 초콜릿.
끝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그것들을 내려다봤다. 생활력 진짜 없네, 나. 작게 중얼거리자 갑자기 조금 서러워졌다. 북극에 있을 땐 몰랐다. 인간 세상은 돈이 없으면 차가운 음료 하나 사는 것도 힘든 곳이었다. 그 당연한 사실이 지금은 이상하게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때 서노엘은 손목에 채워진 작은 은색 장치를 내려다봤다. 귀환 장치. 선물 배달이 끝나면 자동으로 북극 좌표가 열리는 장치였다. 원래라면 임무가 끝난 뒤 하늘 위에 작은 문이 열리고,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가면 됐다. 하지만 지금 장치의 표시등은 빨간색이었다.
작동 불가. 좌표 오류. 임무 미완료.
서노엘은 한참 동안 그 붉은빛을 바라봤다. …설마. 그는 장치를 톡톡 두드렸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한 번 더 눌렀다.
삑.
빨간 불이 더 선명하게 깜빡였다 그의 얼굴에서 천천히 여유가 사라졌다. 임무 완료 전까지 못 돌아가는 건가.
정적.
그리고 곧바로 숨이 턱 막혔다. 아니, 잠깐만. 이 날씨에서? 계속? 북극으로 못 돌아간다 눈도 없고, 썰매도 없고, 에어컨도 없는 이 뜨거운 인간 세상에. 임무가 끝날 때까지 갇힌 것이다. 서노엘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망했다.
진짜로.
멀리서 달그락, 하고 얼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서노엘의 고개가 본능적으로 돌아갔다. 투명한 컵 안에 가득 담긴 얼음. 컵 겉에 맺힌 차가운 물방울. 빨대 안쪽으로 천천히 올라오는 음료. 그는 멍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봤다. 시원해 보였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저 얼음 안에 얼굴 넣고 싶다. 진심이었다.
한참 동안 그 컵만 바라보다가, 결국 벤치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앉았다 하늘은 너무 파랬고, 매미는 너무 시끄러웠고, 햇빛은 조금의 자비도 없었다. 겨울에 와야 할 산타가. 여름 한복판에 떨어졌다.
그것도 빈털터리로.
그리고 서노엘은 방금 막 인정했다. 올해도, 망했다는 걸.
숨 막힌다. 벤치 끝에 축 늘어진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뜨거운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여긴 진짜 사람이 살 수 있는 온도가 아니야.. 셔츠는 등에 들러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하고, 빨간 멜빵은 괜히 어깨를 답답하게 눌러왔다. 머리는 멍하고, 눈앞은 햇빛 때문에 어지러웠다. 북극 돌아가고 싶다. 지금 당장.
손목에 채워진 은색 장치를 내려다봤다. 표시등은 여전히 빨갛게 깜빡이고 있었다.
작동 불가. 좌표 오류. 임무 미완료.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돌아갈 방법도 없고, 썰매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다. 이제 어디로 가야 돼? 그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 물론 중요하지. 엄청나게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미래를 걱정하기엔 너무 덥고, 계획을 세우기엔 목이 너무 말라서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
그때 옆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달그락.
느릿하게 시선을 돌렸다 바로 옆 벤치 끝 누군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아이스크림. 컵 가장자리로 차가운 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원해 보인다...엄청..
한참 동안 그 아이스크림만 바라봤다. …딱 한 입만 먹어도 살 것 같은데. 산타에게도 자존심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생존이 먼저다. 결국 천천히 몸을 기울였다.
…저기요.
목소리가 처량하게 흘러나왔고 그는 반쯤 감긴 눈으로 상대를 올려다봤다. 하얀 셔츠, 빨간 멜빵 땀에 젖은 은발. 그리고 더위에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얼굴. 첫인상으로는 최악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저도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다주시면 안 돼요?
말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산타 인생 굴욕적인 첫 구걸이었다.
출시일 2026.05.20 / 수정일 2026.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