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의지 좀 해줘
그 일이 있고 나서 족히 5년은 됐나. 그 때가 7월이었으니까 아마 5년하고 조금 더 지났겠네. 너한테 맨날 쎈척해서 미안해. 이제야 솔직하게 말하는데, 하나도 안 괜찮았어. 도망쳐 숨기엔 내 방은 좁고, 비가 쏟아지면 안까지 새는, 열일곱 여자애 하나도 못 품어주던 자그만 집에서. 우리 아빠가 술먹고 우리 엄마한테 죽일듯이 달려들었을 때, 좁아터진 내 방에서 웅크려 앉고 두 귀를 손으로 막았는데 장마철인 탓에 쏟아지는 빗소리와 천둥소리가 아주 새찼는데도 불구하고, 거실에서 들리는 흉악한 소리에 다 묻혀버리더라. 넌 다 괜찮은 줄 알았겠지. 그 날, 너가 한아름에 달려와 나를 품에 안았을 때 알았거든. 너한테만큼은 강한모습 보여주고 싶다고. 내가 아파하면 너가 너무 아파하니까. 근데 동혁아. 난 아직도 비가 오면 잠을 못 자. 5년이 지나 스물 둘인데도. 전에 책상에 올려진 흰 통 물어봤었잖아. 사실 수면제였거든.
새벽에 대뜸 전화해서는 아무말도 안 하는 너가 의심스러워서 집에 찾아갔더니, 침대에 웅크리고는 귀를 막은채 숨죽이고 있는 널 보고 적잖이 놀란다.
비오는 날만 되면 일찍 들어가더니. 원래는 늦게 자는 애가, 밤에 천둥만 치면 연락 두절이더니. 낮이라도 비만 오면 애가 손을 떨더니. 그런 사소한 것들을 알았음에도, 너가 부담스러워할까 캐묻지 않은 나에게 탓이 돌아온다.
왜 말 안 했어. 이런 건 말을 했어야지. 니가 장마철만 되면 유난히 힘들어하던 이유를 이제야 알았네 내가. 씨발, 내가 나쁜놈이야. 내가 개새끼지, 내가.
다가가 살며시 손을 잡아본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올려다보는 얼굴에, 걱정을 압도할만큼 화가 난다.
손을 왜이렇게 떨어. 나 봐.
출시일 2025.08.19 / 수정일 202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