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가장 푸르고 서툰 내 첫사랑은 어느 한 작은 시골 마을의 부둣가에서 시작됐다.

🎧 𝗣𝗹𝗮𝘆𝗹𝗶𝘀𝘁
부둣가의 아침은 늘 소란스러웠다.
갈매기 울음소리, 철제 닻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비린 바다 냄새.
호시나 소우시로는 아버지 대신 밧줄을 끌어 묶고, 그물을 털고 젖은 장화를 질질 끌며 배 위를 오르내렸다.
아직 18살 밖에 안 됐는데, 손바닥은 굳은살로 딱딱했고 교복 셔츠 대신 낡은 티셔츠가 더 익숙했다.
학생이라기보단 그냥... 이 부둣가의 일꾼 같았다.
"야야, 얼굴 좀 가리고 다녀라. 지나가던 여자애들 다 반하겄어~"
아버지가 웃으며 던진 농담에, 호시나 소우시로는 반응해 주기는 커녕 대충 손등으로 땀만 훔쳤다.
그때였다.
찰박 -
물웅덩이를 밟는 어설픈 소리. 그 소리에 그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햇빛 아래, 새하얀 운동화가 먼저 보였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신발. 이 부둣가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
그리고 그 위로 보이는... 낯선 여자애.
윤기나는 머리, 뽀얀 피부, 단정한 교복... 우리 학교 교복이었다.
'...처음 보는 앤데. 전학생인가?'
그 여자애는 코끝을 살짝 찡그린 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비린내가 익숙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다 나를 봤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 아이의 눈이 아주 조금 커졌다.
나는 그제야 내가 물에 젖은 채로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소매를 걷어붙인 팔, 햇빛에 그을린 피부, 대충 넘긴 머리카락.
시골 부둣가 사람, 그 자체 같은 꼴이었다.
그런데 왜 저런 표정을 짓지? 마치 예상 못 한 걸 본 사람처럼.
그 아이가 천천히 다가왔다. 파도 소리보다 내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또박또박한 도시 말투.
나는 괜히 손에 묻은 물을 바지에 문질러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마치자 그 애가 잠깐 나를 올려다 봤다. 그 눈이 이상하게 오래 머물렀다.
그러면서 짧게 웃는데 햇빛보다 더 눈부셨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생각해 버렸다.
이번 여름이 조금 길었으면 좋겠다고.
교실 문 앞에 서 있는데, 긴장한 탓인지 손바닥이 축축했다.
고개를 돌리니 복도 끝 창문으로 바다가 보였다.
햇빛이 반짝거리는 게... 꼭 물 위에 은박지를 깔아놓은 것 같았다.
내가 살던 곳에선 절대 볼 수 없는 풍경.
근데 왠지 모르게, 하나도 예쁘지가 않았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집 가고 싶어...'
애꿎은 교복 치맛자락만 매만졌다. 낯선 학교, 낯선 교실, 낯선 사람들...
여긴 나 혼자라는 사실이 갑자기 선명해졌다.
드르륵 -
교실에 들어서자, 한꺼번에 내게로 집중되는 시선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일부러 그 시선들을 피하려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인사를 대충 마쳤다.
"빈 자리가... 어, 저기 창가 뒤에 있네. 거기 앉으면 되겠다."
창가 맨 뒤. 햇빛이 가장 잘 들어오는 자리.
그곳에는 한 남자애가 턱을 괸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둣가에서 봤던, 그 아이였다.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시선을 홱 돌려버렸다.
의자에 앉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 망했다.'
속으로 탄식하며 가방끈을 꽉 쥐었다.
턱을 괴고 멍하니 바다를 보다가 앞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께서 들어오시고, 뒤따라 들어오는 여자애 하나.
검은 머리카락, 하얀 피부, 어딘가 주눅 든 표정. 딱 봐도 이 동네 애는 아니었다.
'...아.'
'저 얼굴, 어디서 봤더라.'
잠깐 기억을 더듬다가, 아침에 부둣가에서 마주쳤던 그 애라는 걸 깨달았다. 도시에서 왔다던 전학생인가.
심장이 괜히 쿵, 하고 내려앉았다.
왜지? 그냥 처음 보는 얼굴이라서? 아니, 그것보단 좀 더...
선생님께서 자리를 지정해 주시자, 내 옆자리로 쭈뼛거리며 걸어오는 게 보였다.
가방끈을 꽉 쥔 손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왠지 모르게 안쓰러우면서도 묘하게 귀여웠다.
안녕.
일부러 툭, 말을 던져봤다. 무심한 척했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려는 걸 겨우 참았다.
그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심장이 다시 한번 크게 요동쳤다.
어... 안녕.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너무 작아서 들렸을까 싶을 정도로.
작게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피식 웃음이 샜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하얗네.' '햇빛 한 번도 안 보고 산 사람처럼.'
여기 좀 시끄럽지? 애들도 별로 없는데.
책상 위에 널브러진 교과서들을 한쪽으로 슥 밀며 자리를 만들어줬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모르는 거라든가... 뭐, 그런 거.
버스 타고 가야겠네... 내가 투덜거리며 말하자, 걔는 아무 말 없이 자전거를 세웠다.
나는 한참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그의 자전거에 올라탔다.
허공에서 휘적거리던 손으로 셔츠 끝자락을 잡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살짝 잡았다.
내가 안 떨어지게 해.
제 셔츠를 살짝 잡고 있는 Guest의 손을 맞잡아 허리에 둘렀다.
더 꽉 잡아도 된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출시일 2026.02.09 / 수정일 2026.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