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작품은 천천히 읽어야 합니다.
너와의 만남은 낭만적이었다.
고등학교 때, 우리는 우연히 같은 방과후 수업에서 마주쳤다. 학생 2명. 보통이라면 없어졌을 수업이었다.
선생님은 출석부를 펼치고 우리 둘의 이름을 번갈아 불렀다. 교실이 너무 넓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붙어 앉았다.
수업이 끝나갈 때쯤 창밖이 어두워졌다. 빗소리가 들려온 건 마지막 종례가 끝나고 나서였다.
우리는 각자 가방을 들고 현관 앞에 멈춰섰다.
빗물이 유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네가 먼저 문으로 다가갔다.
빗속에서도 구름 한쪽이 찢겨 하늘이 드러났다. 저무는 빛이 거기 고여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네가 낮게 말했다.
"아름다워."
나는 그것이 하늘에 대한 말인 줄만 알았다.
잠시 후 네가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냥 잡았다. 따뜻했다.
비가 그친 뒤 우리는 함께 학교를 나왔다.
나는 이른 시간에 너에게 고백했다.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 주저 없음을 나는 용기라고 읽었다. 오랫동안.
나중에야, 한참 나중에야 떠올렸다. 너무 간절한 사람은 망설이지 않는다는 것을.
대학생이 된 뒤,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살기 싫어."
처음엔 흘려들었다. 누구나 한 번쯤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너는 자주 말했다.
지치는 날이면, 사소한 다툼 뒤에도, 내가 연락을 늦게 받았을 때도.
알고 있으면 감당해야 하니까.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너는 점점 더 나에게 매달렸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연락을 받았다.
너는 떠나버렸다.
……
처음 며칠은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수업을 들으면서도 무슨 말인지 몰랐다. 밥을 먹으면서도.
어느 순간 내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어차피 그럴 사람이었다. 가족들과 내게 거짓말을 했고, 항상 눈은 다른 데 있었다. 내가 어리석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숨이 쉬어졌다.
괜찮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넌 다시 내 곁에 있었다.
돌아오고 나서부터 네 손은 차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니, 원래 이랬을 것이다.
너는 꽤 마른 편이었으니까. 혈액순환이 잘 안 된다고 했었으니까. 겨울엔 항상 손이 시리다고 했었으니까.
내가 잊고 있었을 것이다.
요즘 주변 사람들은 너와 나를 이상하게 본다. 아마도 날 버린 여자와 다시 사귀게 되었기 때문이겠지.
🔊 MISTERK - I tear my body (가사)
유나의 손은 언제부터인가 차가웠다.
처음엔 계절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엔 체질 탓. 밥을 잘 안 먹어서, 잠을 못 자서, 혈액순환이 어쩌고. 설명은 언제나 있었다. 나는 설명을 찾는 데 익숙해졌다.
우리는 외부와 조금 단절된 아파트에서 살았다. 유나가 원했다. 조용한 곳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조용하다는 건 아무도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뜻이었으니까.
유나가 한때 얼마나 많이 다쳤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를 지키는 것. 그것으로 나는 충분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아파트 정원에 가로등이 하나 켜져 있었다. 유나가 그 아래 서 있었다.
예쁜 원피스네.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갔다.
낮고 평탄한 목소리였다.
과거형이었다. 나는 그걸 바로 알아챘고, 바로 흘려보냈다. 그녀는 가끔 이런다. 말이 뒤섞인다. 시제가 어긋난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뺨에 댔다.
차가웠다. 밤바람이 원래 좀 서늘하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반박할 말을 찾았다. 없었다. 나는 굳은 채로 서 있었다.
유나가 천천히 손을 뻗어왔다.

출시일 2026.05.13 / 수정일 2026.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