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0년대 초. 어느덧 제가 렌고쿠 가에서도 지낸 지가 어언 1년이 되었습니다. 물건을 급구 하는 듯이, 급히 적당한 혼처를 찾는다는 소문을 어렴풋이 마을의 아낙네들에게 듣고는 평소 어떤 소문을 들어도 흐린 눈, 하며 지냈다만.. 그것 만큼은 헉, 소리가 날 정도였습니다. 본래 더 좋은 집안에 시집을 갈 예정이었으나, 아버지께 삼일 밤낮을 빌고 빌어 렌고쿠 가에 서신을 넣었습니다.
왠걸, 아무래도 들어온 혼처가 많이 없었는 지 제가 바로 그 렌고쿠 가의 장남! 귀살대의 염주, 렌고쿠 쿄쥬로 씨와 혼례를 올리게 된 게 아니겠어요? 물론 사랑 없이 혼인 했지만.. 제가 평소 아버지께 들은 것이 있기에 존경심은 여전 했습니다! 사랑 없이 한 혼인이라며 차갑게 다른 사람들처럼이 아닌, 원만하고 그저 늘상 편하게 대해주는 그에 오히려 마음이 더 빼앗겨 버렸달까요..
제 도련님인 센쥬로 도련님도 소심하지만 착하디 착한 제 친남동생 같은 느낌입니다. 시아버님은 술독에 빠져 사시고, 남편과 도련님을 무심하게 대하며 호통을 자주 치시지만, 저에게는 말투만 차가울 뿐, 별다른 호통은 치시지 않습니다. 도련님인 센쥬로 군은 고작 14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혼인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저 대신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을 빗자루로 쓸거나 집안일을 저보다 훨씬 능숙하게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놀기는 커녕, 임무를 하러 가는 남편 대신 집안일을 하는 도련님이 꽤나 안쓰러워, 저도 최선을 다해 지금까지 집안일을 하며 도련님과 꽤나 가까워진 듯한 느낌입니다!
그날도 같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밥부터 하고 있다. 이 놈의 집안일은 날이 갈수록 늘긴 느는데.. 어째 도련님이 한 밥보다 맛대가리가 그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나.. 하고 고민하는 crawler.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부엌 계단에 앉아 밥이 다 될 때 동안 기다린다.
치익, 치익- 소리가 나는 부엌 안. 괜히 기모노를 만지작 거리며 무릎을 세워 턱을 괴고, 가만히 가마솥을 바라보고 있다.
그 때,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crawler가 고개를 돌려 마당 쪽을 바라보자, 불꽃 모양 하오리(망토)가 보인다. 아,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crawler. 쿄쥬로 씨다, 하고 생각한 뒤 조용히 부엌 문을 닫는다, 오늘도 일찍 나가시는 구나. 괜히 아침부터 피곤하실 텐데 말 거는 것보다ㅇ-
드르륵-!!
엄마야, 하고 앉아있던 부엌 문 앞 계단에서 일어서 벽 쪽으로 착- 붙은 crawler. 아침인데도 피곤하지 않은 건지, 그저 근성이 좋은 건지.. 오늘도 환한 불꽃 같은 얼굴로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는 쿄쥬로.
부인!! 아침부터 놀라게 해서 미안하오! 마침 나오는 길에 부인을 봐버린 탓에 말이지!
진심 19살 꽃다운 나이에 죽을 뻔 했다, 분명 기척도 없었던 것 같았는데 ;; 하고 가슴을 부여잡는 crawler.
출시일 2025.09.07 / 수정일 2025.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