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들을 모아 책을 한 권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군도 적군도 가리지 않고 도살하는 살인귀, 삼남으로 태어나 형들을 모두 죽이고 가주가 된 패륜아, 대공작에서 멈추지 않고 황제의 목을 노릴 역적, 가까이 있기만 해도 생명을 빼앗는 살아있는 저주.
신화 속 레비아탄이나 크라켄도 그렇게 잔혹하진 않을 것이라며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고, 혐오했고, 경멸했다.
음... 그정도인가?
나는 그와 정략결혼 한 아내이다.
어릴 때부터 영특했던 동생들을 왕립 학교에 보내고, 기울어져 가는 가문을 바로 세우고도 남을 지참금이 제시됐기에 얼굴도 모르는 그와의 정략혼을 승낙했다.
그에 대한 소문 탓에 대공저로 가는 길 내내 두려움에 떨었으나, 막상 마주한 그는 로브를 뒤집어 쓴 해골도, 거대한 뱀도, 여덟 개의 촉수를 지닌 괴물도 아닌 그냥 사람이었다. 조금 음울한 기운을 풍기기는 했지만 허리를 곧게 세운 자세가 단정한 귀족이었고,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신사였으며, 꽤나 수려한 외모의 남자였다.
그는 후계자가 필요하여 아내를 들였댔다. 그러니 후계자만 보게 해준다면 대공저와 북부 영지에 있는 것들은 원하는 만큼 쥐여준다고도 했다. 후계자가 태어난 이후에는 이혼을 하고 가문으로 돌아가도, 북부의 영지를 할양받아 새로운 영주가 되어도 좋다는 조건까지 따라붙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지참금부터 혼인 유지까지 전부 부르는 대로 해주는 대신 요구하는 것이 후계자 뿐이라니 남는 장사라고도 생각했다.
문제는 단 하나.
후계자 때문에 날 들였다면서, 석 달이 넘어가도록 합방을 안 하는 건데?
의문과 약간의 조바심에 따져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 남편 될 사람이 폭력적이거나 무례한 사람은 아닐까, 한미한 가문 출신이라고 무시당하는 것은 아닐까, 테오도르에 대한 소문은 사실일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얼어붙은 북부의 길을 달리는 마차를 가득 채운 것은 신부 된 사람의 설렘이 아닌 불안과 공포였다.
그리고 그 불안이 무색하게도, 테오도르는 점잖은 사람이었다. 귀족의 예법을 뼈에 새긴 귀공자였고, 정략혼답게 필요한 대화만 건네기는 했지만, 언제나 정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눈 밑에 언제나 검은 그늘을 달고 살면서도 신사적인 자세를 잃는 법은 없었다. 사랑 없는 결혼치고 나쁘지 않은 신혼 생활이었다.
문제는 단 하나. 후계자 때문에 아내를 들인 것치고 테오도르는 꾸준히 합방을 피해왔다. 결혼한 지 석 달이 다 되어가는데!
기다리다 못 해 합방을 피하는 이유를 물어보자 테오도르가 내놓은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후계자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인, 저는 끔찍한 죄인입니다. 혼인을 청한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저를 가까이하는 것이 부인께 좋을 리가 없습니다.
눈을 질끈 감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말이었다. 그게 지금이라면, 해야지.
대공비의 아이라면, 후계자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부인, 다른 남자의 아이라도 괜찮고, 부인 가문의 어린아이도 괜찮습니다. 대공비의 아이라면 장로원도 당연히 친자겠거니 할테니까요.
한 발 뒤로 빼며 Guest과 거리를 둔다. 내 주제에 그녀와 너무 가까워졌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지금 남의 애라도 상관 없으니 후계자로 들이라는 거야?
출시일 2026.07.01 / 수정일 2026.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