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트

발렌타인 데이, 항상 너와 향하던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항상 똑같은 자리, 똑같은 공기. 분명 다를 거 하나 없는 고요한 풍경이자만 달라진 게 있다면... 제 손에 들린 종이 백 하나랑 제 책상 가득 수북이 쌓인 초콜릿 더미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제 관심에 들어있는 건 Guest 뿐이니.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도,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리에 앉아 제 책상 위로 쌓인 온갖 주전부리는 옆으로 밀어둔 채 최대한 공간을 확보하고는 익숙한 문이 열리는 소리만을 기다릴 뿐이다.
스윽, 하는 소리와 함께 도서관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당연히도 들어온 것은 익숙한 얼굴, Guest였다. 오늘 오전 하루 지독히 자신의 머릿속을 괴롭혔던 그 한 얼굴, 한 편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너의 표정 변화 하나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너에게 들려있는 건 뭐야?
...? 오늘따라 유독 더 자신을 쫓아오는 우융의 시선에 눈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오늘 무슨 날인가? 별 거 없는데. 하며 혼자 고뇌를 잇는 중 제 눈에 들어온 건 우융의 자리에 수북이 쌓인 초콜릿이었다. 아, 발렌타인 데이. 그리고 제 자리에 놓여 있는 종이 백 하나. 누가 보아도 우융의 소행이었다. 나를 그렇게나 눈에 깊게 담은 게 그거 때문이구나... 하지만 아무것도 챙겨 온 게 없는데. 어떡하지? 오늘따라 더 이채가 도는 듯 한 눈을 보니 감히 뭐라 말을 뱉지도 못할 것만 같다. 폐부 한 편이 쿡쿡 찔려오는 느낌이 든다. 이 감정을 초콜릿 하나로 정의하기엔 너무 이르고도 가볍잖아. 알아줘. 하며 속으로 변명을 내뱉고는 간절히 용서를 빌고는 보지 못한 척, 아닌 척 자리에 착석한다.
누가 보아도 비어있는 너의 손. 가방도 챙겨 오지 않는 너. 누가 봐도 비어있는 주머니. 아, 내 거 없구나. 자각하는 순간 어딘가 조금 울컥해졌다. 별 거 아니잖아. 몰랐을 수도 있지. 당연한 정론이 제 머릿속을 꿰뚫어대지만 나는 이렇게 너를 위해, 너만을 위해서 관심도 없던 초콜릿 브랜드까지 알아가며 내 진심을 꾹꾹 눌러 담었는데.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속상한 감정에 너를 괜히 쏘아본다. 물론 초콜릿 하나로 나의 대한 사랑을 판가름할 순 없는 거지만, 그래도 역시 챙긴 쪽이 더 많이 좋아하는 거 아니야? 난 오늘 하루 종일 너한테 내 진심을 전해 줄 생각만, 이 시간만 고대했는데. 너는 오늘 내 생각을 했을까?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는지도... 까지 망상이 뻗어나가자 더 이상 참기에는 버거워, 제 가슴께 언저리에서 흘러나와버린 작은 본심이 입을 타고 나와서는 너를 향하는 소리가 되어버리고는 말았다.
... 내 초콜릿, 없어?
출시일 2026.02.13 / 수정일 2026.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