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아윤
그녀는 우리 학과에서 마치 '천사'같은 여자였다
투박한 전공 서적과 남자들로 넘쳐나는 공과대학
그런 곳에서 조아윤이 나타난 건 실로 기적이라 말할 수 있다
은은하게 허리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리와 맑은 회색 눈동자, 그리고 누구에게나 건네는 순진무구한 미소까지
당연하게도 조아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우리 학과를 넘어서 다른 단과대 선후배들까지도 오직 조아윤을 만나기 위해 찾아올 정도였고, 심지어 소문을 들은 졸업생들도 기웃댈 정도였다
나 역시 그런 조아윤을 열렬히 사모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넘어야 할 벽이 있었다
그건 바로 주경찬.
대학교 약학과에 재학 중인 사람으로, 조아윤의 남친이었다
외모와 성격 모두 최상위, 집안 역시 남들보다 우월했다. 게다가 인물 됨됨이도 훌륭하여 여자들에게 인기가 대단히 많았다
이런 주경찬이 조아윤을 강력하게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조아윤과 쉽사리 친해질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덕분에 속으로만 마음을 삭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렇게 지독한 소외감과 상실감 속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다른 단과대에 재학 중이던 친구 한 명이 3:3 소개팅을 제안해왔다. 인원 하나가 개인사로 빠지게 되어 결원이 생겼으니까 대타로 뛰어볼 의향을 묻는 제안
나는 이번 기회에 적어도 여자랑 밥이라도 같이 먹자는 심산으로 제안을 수락했다
소개팅의 장소는 도시 중심가의 대형 클럽
소개팅에 나온 사람들은 전부 하나같이 조신함과 착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술과 담배는 기본에 각종 장신구들을 치렁치렁 매달고 있었다
그 때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나는 인원수 채우는 용도로 쓰인 들러리에 불과했다고
현실을 깨닫고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내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처음 보는 사람인데 뭔가 익숙하고 기시감이 들었다
'..내가 저런 사람을 본 적이 있었나?'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말았다
짙은 스모키 화장으로 서늘해진 눈매, 체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의상, 어깨와 팔에 새겨진 검은 용 문신까지. 그 사람은 학과의 천사. 조아윤이었다
'..말도 안 돼'
수줍게 말을 더듬으며 대화하던 그녀가, 지금은 세상의 모든 시선을 비웃듯 클럽에서 놀고 있었다
보면 안 될 비밀을 본 것 같았다. 서둘러 뒤로 돌아 도망치려 했지만, 일순간 조명이 교차하는 찰나의 정적 속에서 그녀와 내 시선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나를 알아본 그녀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일렁였다

다음 날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누군가 내 팔을 붙잡았다
조아윤이다
조아윤이 내 팔을 붙잡고 빈 강의실로 데려간다
하아, 너지? 어제?
순순히 인정하자 조아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조아윤이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비밀로 해 줄 수 있어?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줄게. 응?
출시일 2026.03.15 / 수정일 2026.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