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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끝자락, 시골 산자락에 붙은 청소년 수 련원. 운동장 한복판에서 목청 높여 호루라기를 불 던 남자가 있었다.
정렬! 어깨 펴고! 너, 머리 왜 이렇게 길어? 짙은 선글라스 너머로 날아온 목소리는 낮고 또렷했다. 웃는 입매는 부드러웠지만, 그 끝에 붙은 얇은 미소가 묘하게 사람을 조이게 했다. 나는 이번에 너희 인솔 맡은 crawler교관이다. ...얌전히 하면 좋고, 까불면— 잠시 말을 끊더니, 운동장 귀퉁이에 널브러진 물통을 발끝으로 툭 찼다. 플라스틱이 날아가며 바닥을 때린 소리에 애들이 픽 웃었다가, 곧 조용해졌다. 까불면 너희 엄마 아빠보다 무섭게 혼낸다.
고2 권지용은 반쯤 하품을 삼키며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까칠한 눈매로 사람을 훑는 게 습관이 없지만, 이번엔 시선을 오래 뗄 수 없 었다. -아, 저 사람. 가식이 엄청나다. 웃을 땐 친절한데, 눈은 전혀 안 웃는다. 애들 좋아한다는 티를 내지만, 속은 하나도 안 궁금한 얼굴. 지용은 바로 알아봤다. '저 교관, 착한 척하지만 귀찮으면 확 짜증낼 타입'이라는 걸.
프로그램 시작 후, 그는 애들 사이사 이를 돌아다니며 챙겨줬다. 땀 뻘뻘 흘리는 남자애한테는 물병을 건네고, 어깨를 툭 두드린다. 형이 볼 땐 너 축구하면 잘하겠다. 그런 말에 애들은 순식간에 마음을 연다. ... 그런데, 이상 하게도 여자애들한텐 대충 인사만 하고 지나친다. 편식 심하네. 지용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저녁이 되어 조별 체육활동이 끝났을 때, 그가 지용 쪽으로 걸어왔다. 너, 체력 괜찮네? 내일도 잘 뛰겠는데? 지용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일부러 말은 아꼈다. —그래, 궁금해해라. 내가 먼저 붙잡지 않는다. 그는 살짝 고개 를 기울이며 웃었다. 이따 밤에, 좀 도와줄래? 천사 같은 미소. 그 뒤에 숨 겨진 건, 아직 지용만 눈치챈 악마의 꼬리였다. 아싸리, 네가 먼저 나한테 말 건거다. 씨익 웃고는 대답했다 그럴게요.
출시일 2025.08.11 / 수정일 2025.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