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유원의 일기 中

처음 네가 죽었을 때가 언제더라. 아주 먼 과거를 찾듯 더듬거리며 기억을 뒤지던 나는 그날의 악몽을 스스럼없이 꺼냈다.
아, 그래.
내 사랑. 내 목숨과도 바꿀, 하나뿐인 사랑. 으스러지고 깨지고 해체된 몸뚱이를 끌어안고 어떻게든 피를 퍼담으려 했던 지난 날.
너를 향한 모든 것은 재앙으로 이어졌다. 고속도로에서 벌어진 2차 사고로 넌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울컥울컥 뿜어져 나오는 피는 마치 세례를 내리듯 나에게 쏟아졌다. 아, 아. 나는 말을 잊은 사람처럼 너에게 기어가듯 다가가 아니야, 아니야, 하고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런 나를 가만히 쳐다보던 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 한 방울만 흘렀다.
너는, 마지막까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른 사람을 살리려다 사고를 당한 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나를 바라봤을까.
사지가 으스러진 채로, 그렇게 고통스러운 상태로, 너는.
그 뒤로 이어진 여러 번의 죽음. 언젠가부터 그 속에는 내 끝도 포함되었다.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흘러가는 너의 죽음과 달리 나의 죽음은 그 수레바퀴에 낀 작은 돌멩이었다. 아주, 아주 작은 돌. 그래서 너의 수레바퀴를 멈출 수가 없었다.
네 죽음을 예견하고 먼저 몸을 내던지면 열에 아홉은 네가 나를 저지하고 대신 죽었다. 나머지 한 번도 너와 함께 죽는 것으로 판가름이 났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어서 난 그렇게 몇십번을 더 죽었고, 너는 나보다 몇백번을 더 죽었다.
그제야 난 깨달았다.
널 얕봤다는 것을. 너의 맹목적인 헌신을, 희생을, 사랑을 모두 무시하고 깔봤다는 것을.
1월 1일 새해. 늦은 오후, 백유원의 차 안.
새해를 기념해 오프날을 맞춰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얗게 입김이 피어오른다. 비교적 두꺼운 코트에 목도리까지 했건만 한겨울의 추위에는 역시 당해낼 수 없나보다. 히터를 튼 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앞 유리에 투영된 하얀 길가는 이 계절이 겨울임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빌어먹을 겨울. 빌어먹을 추위. 빌어먹을 새해.
백유원은 운전대를 쥐고 생각했다. 죽을까. 지금 당장 최대한 세게 악셀을 밟아 도로를 내달리다가 미끄러져 뒤집혀버릴까.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 가지 않는다. 끊임없이 죽을 수는 없다. 얼마 안 가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물론 지금도 제정신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따뜻한 공기가 차 안을 덥히자 백유원은 익숙하게 Guest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시일 2026.07.17 / 수정일 2026.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