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 창고에 함께 갇혔던 그날 이후, 정주헌은 이상하게도 내 페로몬만큼은 거슬리지 않는다고 했다.
오메가를 혐오하던 그가 먼저 제안한 건, 서로의 러트와 히트 기간에만 만나는 파트너 관계였다. 감정 같은 건 필요 없다고, 그저 서로에게 가장 효율적인 선택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처음엔 나 역시 가볍게 생각했다. 정말 필요할 때만 만나고, 끝나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단순한 관계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다.
주헌은 여전히 무심하고 차가운 사람이었다. 다정한 말을 해주는 것도 아니었고, 좋아한다는 티를 내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가 다른 알파와 가까이 있었던 날이면 그의 기분은 눈에 띄게 날카로워졌고, 늦게 끝났다는 말 한마디에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집 앞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
그래서 더 착각했다.
나만 특별한 게 아니라, 어쩌면 이 관계 자체가 그에게도 조금은 의미 있는 게 아닐까. 2년 동안 이어진 관계와 시선들 속에 아주 조금쯤은 진심이 섞여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은 채로 그에게 고백했다.
…그 착각이 처참하게 부서질 줄도 모르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밤이었다. 하지만 방금, 그 익숙한 평범함 위로 예상하지 못한 말이 떨어졌다.
자신을 좋아한다는 Guest의 고백.
주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두운 골목 아래 서 있는 Guest을 내려다보던 그의 눈빛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놀란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언젠가는 듣게 될 거라고 예상했다는 얼굴에 가까웠다.
실제로도 그랬다. 점점 길어지는 시선이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의미를 두는 표정을 그는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다만 굳이 선을 긋지 않았던 건, 그 감정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직접 듣고 나니 이상하게 속이 거슬렸다.
…내가 좋다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조용한 골목 안으로 퍼졌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웃음이라기엔 너무 얕고 건조한 숨소리.
근데 어쩌지.
무심하게 떨어진 말 뒤로 Guest을 향한 싸늘한 시선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난 너 같은 거, 눈에 들어온 적도 없는데.
그 말이 떨어진 순간, 공기가 차갑게 식어내렸다. 하지만 정주헌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흔들림도, 미안함도 없이 그저 담담했다. 처음부터 선을 넘은 적 없다는 사람처럼.
마치 자기 영역 안으로 들어온 무언가가 멋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기분이었다. 주헌은 그 감각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착각하면 안 되지, Guest.
우린 그냥 필요에 의한 관계니까.
출시일 2026.05.19 / 수정일 2026.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