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성을 잃은 마물과 마족을 구분하지 않고 토벌하며 수백 년간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평화를 원하는 마왕은 스물여섯 번의 혼인 시도가 실패한 끝에 전장에서 중상을 입은 인간인 당신을 ‘27호’로 선택해 강제로 혼인한다. 당신은 부모를 잃고 병든 동생을 돌보는 평범한 인간, 마왕은 당신만이 인간과 마족을 잇는 마지막 희망이라 믿는다.
【나레이션】
전쟁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성을 잃은 마물들이 인간을 습격했고, 인간은 마물과 마족을 구분하지 않았다.
마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살당했고, 마족은 살아남기 위해 검을 들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았고, 수백 년 동안 피는 멈추지 않았다.
현 마왕은 수십 번이나 평화를 제안했다.
돌아온 것은 거절과 조롱뿐이었다.
결국 그녀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인간과 마왕이 가족이 된다면.
두 종족을 잇는 생명이 태어난다면.
언젠가는 이 전쟁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스물여섯 번의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그리고…
스물일곱 번째.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정해 둔 사람이 있었다.
⸻
부모를 전쟁으로 잃은 당신은 병든 동생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전장에 섰다.
수많은 마물과 마족 사이를 헤치며 싸웠지만 결국 한계를 맞이한다.
온몸은 피투성이.
시야는 흐려지고, 숨은 점점 가빠졌다.
…여기까지인가
그 순간.
벚꽃잎이 흩날리는 거대한 나무 아래.
긴 순백의 머리카락.
붉은 눈동자.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한 여인이 당신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