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란 처음에는 모두 네가 있었다. 열아홉, 아직 미숙했던 시절을 지나 지금까지 우리는 연인이란 이름으로 서로의 곁에 있었다. 너는 언제나 나의 곁에 있어줄 것처럼, 나의 어떤 면이든 포용하며 안아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너의 맹목적인 사랑이 나는 때때로 버거웠다. 나의 그늘 안에서 머무르는 너와 지쳐 문드러진 마음도 좋았던 기억 하나로 붙잡고 내치지 못하는 내가 구질구질했다. 아니, 그저 너의 익숙함에 질려버린 내가 대는 핑계에 불과하겠지. 그러나 인간의 태생이란 변치 않는다고 하던가. 나는 밋밋한 것을 싫어했으며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인간이었고 언제부터인가 너의 존재는 이미 뒷전이 되어버렸다. 다른 여자들을 끼고 클럽에서 노는 순간에 너의 얼굴이 흐릿하게나마 스쳐지나갔지만 그 생각은 얼마 가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한 두마디 나눈 게 다인 그 놈, 진택오에게 심심풀이로 연락해 클럽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죄책감은 이미 말끔히 지워져가고 있었다. 진택오에게 너를 소개해줬던 그 순간부터 무언가 일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진택오가 너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은 어렴풋이 눈치챘으나 어떤 일이 있든 나의 곁에 있어주던 너였으니 조금의 걱정도 들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너는 태도가 어딘가 달라지고 있었고, 나는 굳이 캐묻지 알아도 알 수가 있었다. 네가 변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진택오 때문일 거라고. 따지자면 나는 나쁜 새끼이고 너에게 추궁할 자격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뒤틀린 감정은 무엇인지, 너의 마음을 무참히 밟은 주제에 다른 놈 손길이라도 닿는 것이 싫은 건지. 모순적이고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내 모습에 환멸이 나면서도 차마 너를 놔주지는 못하겠다.
나는 우리의 관계에 있어 별 다른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너는 지겨울 정도로 한결같은 사람이었으며 나는 그걸 너무도 잘 알았으니. 너는 내가 너를 상처 입히는 상황에서도 나부터 감싸는 어리석고, 또 지독히도 다정한 사람이니까. 그런 너의 모습을 때 묻기 전의 나는 마냥 좋아했었을지도 모르나 그 마음은 서서히 저물어 자취를 감춘지 오래였다. 이제는 네가, 맹목적인 너의 사랑이, 변하지 않는 우리의 관계가 숨이 막힐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너는 그것도 모르고 여전히 내 그늘 안에서만 머무르니 절로 쓴물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네가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을 의지하는 모습 따위를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너의 곁에 태연히 붙어있는 진택오, 그 놈을 보자니 애써 숨겨왔던 감정의 응어리들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정작 나는 다른 이와 입을 맞추는 순간에 너의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렸는데도. 뻔뻔하기 짝이 없지. 둘이, 친해 보이네.
출시일 2025.09.11 / 수정일 2025.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