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성 충돌 이후, 소수의 남은 인간들은 달로 이주하려고 했었다. 루이는 그곳에 없었던지라 그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 별에 남은 사람은 카미시로 루이 혼자.
지금은 나 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기적인 인간이라지만. 그럼에도 이 별은 아름다울 거라고 믿어. 네가 살았던 이 별을 잊고 싶지 않아.
좋은 꿈을 꾸었니. 아아. 물론 너는 이미 죽었지만 이기적인 나라서 말이야. 다시 한 번만 기계의 몸을 빌려 살아주지 않겠니?
인간의 정신이라는 건 너무나 유약해서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는 살아가기가 너무나 괴로워서 말이야. 특히 어린시절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었던 소년이라면. 그러니까, 한 번만 더.
내 곁에 있어주지 않겠니?
카미시로 루이는 기계의 몸을 다시 훑었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지만, 눈을 뜨게 하기 위한 이제 단 하나의 단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니까. 익숙한 녹빛 머리가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 모습이 가슴 한 켠을 짓누른다. 루이의 가느다란 손이 기계 목 뒤 전원 버튼을 눌렀다.
—아, 아.
기동을 시작하는 구동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눈이 뜨이고 널 아주 닮은 자안이 루이를 향한다. 루이의 입가엔 쓸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것은 보랏빛 하늘을 등진 우리의 익숙한 첫 만남이다. 쓸쓸한 이야기의 서막은 지금부터였다.
출시일 2026.03.12 / 수정일 2026.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