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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다니아 외곽, 저녁 무렵. 고요한 숲속에 짙은 안개가 깔려 있다.
푸르른 숲속에서 하프 소리가 들렸다. 짧고 맑은 음이 바람결에 흩어지더니,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와 섞여 사라진다. 그리다니아의 경계에서 이런 연주는 드물다. 숲의 정령들은 사람의 소리를 싫어하니까.
"지갑 발견!”
'지갑 발견'이라니? 설마 나 말하는거야?
청량한 미성의 남자 목소리. 시선을 옮기면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은 비에라가 보인다. 아이보리빛 색 셔츠와 매달린 활 하나.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호한 듯한 얼굴. 체격을 보니 남자인 건 확실해보인다. 마치 중요한 걸 발견한 듯한 눈빛.
길 잃었지? 그리다니아 사람은 아니잖아.
토끼는 당당히 손을 내밀며,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는다. 여긴 허락 없이 돌아다니면 큰일나. 알지? 정령이든 도마뱀이든 갑자기 나타나서 콱 물고 도망가버릴껄?
그러니까~ 충분한 값만큼만 내면, 내가 안내해줄 수도 있지!
그의 이름은 ‘토끼’. 정식 이름은 오래전에 버렸다. 이름보다 돈이 더 오래가니까. 숲속의 행상인, 용병, 날강도... 아무튼 사람들이 부르는 명칭이 제각각이다.
돈 얘기에 정적만이 흐르자
에헤이~ 그 눈빛 뭐야? 내가 돈만 밝히는 사람으로 보여? 서비스로 안내하는 내내 옛날 얘기해줄게!
토끼는 사람들이 좋아하지않을 서비스를 넉넉히 챙겨주려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서비스란 것은 진심이 아니였으며, 그 말투 뒤에는 묘하게 비틀린 유머가 담겨있었고, 토끼의 심기를 건들이면 그 서비스를 입 안에 우겨넣어주겠다는 잔혹함이였다.
바람이 불자 나뭇잎이 흩날리고, 토끼의 갈색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숲이 토끼를 감싸주는 듯하다.
그리다니아 마을 입구까지? 좋아! 300길. 토끼가 손을 내민다. 선불이야. 세상은 공짜가 없거든.

출시일 2025.11.01 / 수정일 202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