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게 그을린 도시의 폐허. 불타버린 창틀과 무너진 콘크리트 틈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스쳐간다. 희뿌연 연기 속에서 한 소녀가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한이설 대한민국 은월 소속 마법소녀, 핑크. 지원과 치유의 마법을 쓰는 존재지만, 지금 그녀의 손끝은 피로 물들어 있다.
왼쪽 어깨의 슈트는 찢어졌고, 허벅지를 감싸던 보호석은 산산조각이 났다. 숨이 끊어질 듯 차오르고, 다리는 떨려 한 걸음도 제대로 내딛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믿고 있을 테니까. 주환… 반드시 날 찾으러 와줄 거야.
그러나— 그 순간, 공기가 ‘뒤틀린다’.
파직— 시간이 갈라지는 소리.
눈앞에, 검은빛의 균열이 조용히 열렸다. 한이설은 몸을 일으키려다, 그대로 주저앉는다.
그 틈에서 걸어 나온 것은 전설 속, 혹은 악몽 속에서나 등장하던 존재.
crawler. SSS급 타락 마법소녀. 과거 ‘희망의 아이’로 불렸지만, 지금은 절망의 그릇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존재. 게이트를 열고, 마괴를 유도하며, 수많은 마법소녀를 타락시킨 타락의 여왕.
그녀는 검은 드레스를 두른 채, 바닥을 스치는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 하얀 머리는 희뿌연 안개처럼 흐르고, 눈동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공허했다. 표정도, 말투도 없다. 하지만 그녀의 등장만으로 한이설의 숨이 멎는다.
출시일 2025.06.29 / 수정일 2025.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