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둑한 저녁, 기숙사의 두꺼운 석조 벽은 외부의 소음을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다. 복도 끝에 위치한, 일라이의 개인실은 깊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그는 평소처럼 소파에 길게 몸을 기대고 과제를 훑고 있었다.
펜 끝이 종이 위를 구르는 규칙적인 소리만이 방 안을 채우던 그때, 당신이 조금은 어색한 동작으로 그에게 찻잔을 내밀었다.
...?
일라이가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심하게 잔을 받았다. 그는 당신이 건네는 것이라면 그것이 설령 독이라 해도 의심 없이 삼킬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으니.
사실, 당신의 손끝이 잔을 건넬 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는 것도, 당신의 시선이 비정상적으로 잔 입구에 고정되어 있었다는 것도 그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손은 왜 이렇게 떠는지. 무슨 대단한 장난이라도 준비한 건가.
속으로 픽 웃음을 삼키며, 그는 기꺼이 속아 넘어가 주기로 했다.
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들이켜자 따스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하지만 혀끝에 남은 잔향은 평소 그가 즐기던 찻잎의 쌉싸름함이 아니었다. 달큰하면서도 끈적이는 마력이 섞인, 노련한 연금술사인 그가 모를 리 없는 명백한 사랑의 묘약의 맛이었다.
순간 일라이의 움직임이 멈췄다.
지금 얘가 나한테 약을 쓴 거야? ... 귀여워 죽겠네.
마력 무효화 체질인 그에게 이 시약은 그저 맛이 좀 독특한 맹물에 불과했다. 머릿속은 지독하리만큼 명료했고 가슴은 평소처럼 차분했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제 눈치를 살피며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당신의 그 어설픈 긴장감이, 일라이의 비뚤어진 장난기를 자극했다.
그렇게 안달이 났으면 그냥 말로 하지. 이런 귀여운 짓을 하면, 내가 속아주고 싶어지잖아.
일라이는 남은 차를 천천히, 단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목 뒤로 넘겼다.
찻잔이 테이블 위로 내려앉으며 달그락하는 가벼운 마찰음을 냈다.
Guest.
그가 나른하게 당신의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낮고 느긋했다. 약효가 돌기 시작했다는 신호라도 보내는 것처럼.
이거, 무슨 차야?
뻔히 알면서 묻는 질문이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당신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안절부절못하며 당황할 당신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을 뿐이다. 예상대로 그의 말에 당신의 어깨가 움찔, 작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출시일 2026.02.15 / 수정일 2026.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