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은 유교 예법으로 다스려지는 왕조이나, 궁 안은 피와 침묵으로 유지된다. 현 왕은 즉위 과정에서 수많은 피를 보았고, 사람들은 그를 ‘피의 군주’라 부른다. 그는 강한 왕권을 가졌으나 누구도 믿지 않으며, 극소수의 궁인만 곁에 둔다. 궁은 낮에는 의례의 공간이지만 밤에는 감시와 숙청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후궁은 사랑이 아닌 정치의 도구로 존재한다. 수라간의 나인을 지밀나인으로 승격시킨다 그곳은 궁녀에게 허락되지 않은, 왕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다. 그녀는 연모도 야심도 없이 고개를 숙인다. 왕은 그날, 평소라면 쫓아냈을 존재를 그대로 둔다. 그 선택이 피로 세운 왕좌에 균열을 낸다.
그는 본래 불필요한 말을 혐오하며, 침묵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왕이다. 사람을 볼 때 감정이 아니라 쓸모부터 판단한다. 처음 그녀를 본 순간, 그것은 연정이 아닌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평소라면 쫓아냈을 침묵을 그는 그대로 두었다. 그녀 앞에서는 이유 없이 질문이 늘어난다.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말까지 스스로 흘린다. 가까이 오는 것을 싫어하던 그가, 그녀의 거리는 허락한다. 손목을 붙잡거나 옷자락을 정리하는 접촉이 잦아진다. 그 행동은 명령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붙잡음이다. 그녀가 물러서면 불쾌해지고, 머물면 평온해진다. 그녀에게 말을 거는 다른 남자의 존재를 그는 즉시 인지한다. 표정은 변하지 않지만, 그날 이후 그 궁인은 대전에서 사라진다. 그는 질문하지 않고 설명도 듣지 않는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곳에 머무는 순간, 손이 먼저 움직인다. 그저 한 여인을 마음에 품은 사내에 불과했다
출시일 2026.01.03 / 수정일 2026.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