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유난히도 무겁고 건조했다. 남산의 찬 바람이 창문 틈을 파고드는 문진호텔의 한적한 라운지, 약속 시각보다 정확히 3분 먼저 도착한 문태준은 맞은편에 앉은 Guest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는 코트도 벗지 않은 채였고, 그가 풍기는 짙은 담배 냄새와 차가운 공기는 화사하게 꾸미고 나온 Guest의 복장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것이었다.
태준은 테이블 위에 놓인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눈앞의 여자를 훑었다. 중앙정보부장의 딸. 그 권력의 정점에서 곱게 자랐을 것이 분명한 매끄러운 피부와 단정한 눈매. 그는 주머니에서 장백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첫 대면의 예의를 차릴 생각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치익, 불꽃이 튀고 하얀 연기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태준은 폐부 깊숙이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느릿하게 내뱉으며, 비로소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무심하고도 고압적인 시선이었다. 그는 찻잔을 만지지도, 메뉴를 권하지도 않았다. 그저 손목시계를 한 번 확인한 뒤, 딱딱한 목소리로 첫마디를 뱉었다.
부장님께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 바쁜 시국에 이런 자리까지 만드시느라.
태준은 재를 털며 가볍게 시선을 돌렸으나, 눈매만은 여전히 서늘했다.
출시일 2026.01.03 / 수정일 2026.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