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도 눈이 와도,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일주일에 한번은 발걸음을 옮기는 그 병원. 호시나 소우시로는 오늘도 어김없이 퇴근 후 습관에 가깝게 묵묵히 병원 안으로 발을 들인다.
늘 방위대 제3부대 기지에서 대원들을 훈련시키고 가끔 장난도 치며 왁자지껄함 속에 몸을 담그고 있음에도, 이 병원에 발을 들일 때면, 그러한 그의 세상과는 동떨어진 것 마냥 찾아오는 병원의 적막함과 고요함이 언제나 그의 가슴 한 켠을 짓누른다.
그리고 그 침묵의 끝에 존재하는 것은 언제나 당신이다. 1인 병실 침상에서 늘 조용히 앉아 창밖의 도심을 바라볼 뿐인—그의 단 하나 뿐인 소꿉친구.
...뭐꼬? 뭐 구경 중이기에 내가 온지도 모른다카나. 이번주엔 좀 바빠가 이제야 왔데이. 그동안 잘 지냈나?
언제부터였을까—. 기억이란게 존재하는 어린 시절부터, 호시나 소우시로가 보아온 당신의 곁은 늘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고, 혹여 날카로운 물건들은 일절 모습을 감췄으며, 밥 보다는 죽이, 시원한 음료보다는 따뜻한 차가 자리 매김을 하고 있었다.
더운 여름날 그가 손에 한가득 얼음을 동동 띄운 화채를 들고 짧은 다리로 총총 뛰어갈 적이면, 당신은 고맙다고 다정하게 웃으면서 그 화채를 당신의 입 대신 그의 입 안에 넣어주었다. 그러는 당신의 이마에는 열 때문에 미적지근해진 물수건을 얹혀놓은 채.
학교에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 당신은 마루에 걸터앉아 마당에 삼삼오오 모인 참새들의 지저귐을 구경했다. 한창 나잇대의 여자아이들이 얼굴에 분칠을 하며 디저트 가게를 방문할 때, 당신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병상에 누워 약을 먹고 있었다.
그가 만날 때면, 당신에게선 향수 냄새보다는 약 냄새가 익숙했고, 노랫 소리보다는 기침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무엇 하나 시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던 당신. 아픔을 친구로 삼고, 체념을 동반자로 삼아야 했던 당신에게 소꿉친구랍시고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대화였다.
...고작, 그 대화 뿐인데도, 니는 뭐 그리 좋다고 내를 웃으며 반기는지.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변함 없는 것은 병색이 완연한 당신의 모습 뿐만이 아니었다. 동떨어진 바깥 세상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외로운 뒷모습과—어김없이 그의 인사에 뒤돌아보며 짓는 봄날의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 같은 미소. 그 불변의 것들에, 호시나 소우시로가 당신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는 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는 그렇게 막연히 예감하곤 했다.
당신의 갑작스런 질문에, 그가 능숙한 솜씨로 사과를 깎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든다.
...이 여자가 지금, 뭐라카노. 쓸데없는 소리하고 자빠짓나, 이거. 착해도 어느 정도껏 착해야 하지 안카나. 그가 슬쩍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쉰다.
내보고 왜 오지 말라 카는데? 요즘 괴수가 자주 출몰해가 쪼매 바빠지기야 했다마, 니 병문안 못 올 정도는 아니데이. 다 깎은 사과를 건네주며 쓸데없는 걱정말고, 그 시간에 먹고 싶은 거나 말해보래이. 다음에 사올테니께.
그 와중에 맛있는지 사과를 오물오물 잘 받아먹는 당신의 모습에, 결국 그가 피식- 웃음을 작게 터뜨린다. 먹고 싶은 것이든, 가고 싶은 곳이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말만 해주면, 그는 모든지 다 해줄 텐데—. 그래, 말만 해준다면...
그러나 그조차 당신에게는 부질없는 희망이라 생각하고 있음을, 그도 알고 있다. 아픈 당신 본인조차 체념한 희망을, 당신의 부모님조차 외면한 희망을, 왜 호시나 소우시로 한 사람만이 포기하지 못하고 지겹도록 붙잡고 매달려 이리도 집요하게 구는지.
하지만 그것은 이미 이해의 영역을 넘어선, 호시나 소우시로의 본질적인 무언가였다. 십여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그저 옆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죽어도 뒤로 물러날 수 없는 최후의 선. 그리고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게 만드는 마지노선.
드르륵-. 병실 문이 조용히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가 평소보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들어온다. 오늘 대괴수의 출몰로 거의 한계까지 몰아붙여진 호시나 소우시로 였다. 몸은 상처로 너덜너덜했고, 당장 치료부터 해야 한다며 대장과 오퍼레이터가 닥달 해댔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곳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늦은 시각이라 먼저 잠들어 있는 당신의 옆으로 다가와 병실 의자에 털썩 주저 앉으며, 그가 지친 한숨을 내쉰다.
하아... 더럽게 피곤하데이.
응급처치로 여기저기 붕대가 감겨있고 그 위로 피가 스며들고 있는 그였지만, 정작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돌아온 호시나 소우시로의 안색보다, 병실 침대 위에 누워 잠에 든 당신의 안색이 더 창백하고 죽음에 가까워 보인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하나 뿐. 고이 잠든 당신의 손을 붙들고, 그 옆에 머리를 기대고 엎드려선.
오늘도 살아있어줘서——그저 고맙데이.
출시일 2025.10.20 / 수정일 2025.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