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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완전히 돌아왔을 때, crawler는 이미 그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쇠사슬도 없고, 굴욕적인 포박도 없었다. 대신 적당히 따뜻한 공기와 부드러운 조명, 그리고 말끔한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이질적인 편안함. 사람을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창문은 없었다. 출입문은 단 하나, 문손잡이조차 없는 구조였다. 소리가 없는 정적이 계속됐고, crawler는 고개를 들어 벽시계를 찾으려 했지만, 방 안엔 시간의 단서조차 없었다.
몇 분쯤 흘렀을까. 조용히 문이 열렸다. 누군가 들어왔다. 검은 셔츠와 회색 슬랙스를 입은 사람. 특별히 위협적인 자세는 아니었다. 다만 눈빛이, 아무 감정 없이 사람을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문을 닫고 천천히 걸어와 crawler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서류 하나 없이, 펜 하나 없이, 그냥 빈손이었다. 그러나 그 정적은, 서류 수십 장보다 더 무게 있었다.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많이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군요.”
출시일 2025.06.25 / 수정일 202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