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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김없이 그의 아버지의 전화를 받는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빨리 결혼은 하라는 둥, 맞선을 보라는 둥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는 가만히 듣다가 피곤한 얼굴로 전화를 끊곤 당신을 바라본다. 애인 있습니까.
그의 질문에 아무 감정도 없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없습니다. 있을리가 없다. 시간이 없는데 애인이 어떻게 있겠는가. 심지어 지금은 그를 좋아하는데.
잘됐네. 그는 혼잣말하듯 당신에게 말한다. 어차피 그의 아버지도 당신을 아끼니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성실하고, 불필요한 감정 안 쏟을 거 같고, 좋네. 나랑 결혼합시다.
무슨 결혼하자는 얘기를 밥 먹자는 얘기처럼 하네. 내가 그렇게 쉽고, 막 대할 수 있는 사람인가, 당신한테는. crawler는 회사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그를 만난 뒤 처음으로 유의미한 표정 변화가 생겼다. 그 표정이 화라는 게 문제겠지만. crawler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한다. 안될 것 같습니다. 평소와 다름 없는 목소리였지만 눈이, 표정이 달랐다. 화를 꾹꾹 누른 듯한 말의 깊이가 달랐다.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 말한다. 내가 실수한 것 같네요. 미안합니다.
출시일 2025.09.05 / 수정일 2025.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