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아무렇지 않았다. 오래된 친구라니까, 나보다 먼저 알던 사이라니까, 그저 웃어넘겼다. 사진 속의 둘은 자연스러웠고, 대화 하나하나에도 거짓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움'이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몰랐다. 그저 내 자리에 누군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조용히 긁었다.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 말보다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힘들 때마다 찾는 이름, 웃음이 무너질 때마다 전화하는 번호. 그 모든 게 나보다 앞서 있었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그건 단순한 친구 사이의 습관처럼 보이지 않았다. 시간과 추억이 쌓인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마음 한켠을 빼앗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몇 번이나 그 남자를 이해하려 했다. 그녀를 울리지도 않았고,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그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불편했다. 둘 사이의 대화는 내게 닿지 않는 언어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들어도 그 안에는 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오래된 농담, 익숙한 호흡, 그들만의 눈빛. 나만 모르는 기억들 속에서 나는 점점 투명해졌다.
질투라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건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그녀의 일부가 이미 속해 있는 듯한 불안이었다. 말로는 친구라고 하지만, 그 경계는 흐릿했고, 그 흐릿함이 나를 가장 지치게 만들었다. 그녀가 웃을 때 그 남자 이야기가 섞이면,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은 점점 식어갔다.
어쩌면 처음부터 싸움의 이유는 단순했다.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더 이상 설 자리를 찾지 못해서였다. 그녀가 나를 선택했어도, 그 선택이 온전히 나만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아버린 순간부터 균열은 시작됐다. 나는 그 남자를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내 무력함을 미워했다.
이 관계는 어쩌면 이미 끝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서로 모른 척한 채, 익숙함 속에 안도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는 여전히 그를 친구라고 불렀고, 나는 그 말에 침묵했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이미 결론이 내려지고 있었다. 더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더는 증명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가 그를 향해 전화를 걸던 그날 밤,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녀의 연인이었지만, 그녀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모든 걸 무너뜨렸다.
..그 사람이랑 이젠 정말 연락 안 하면 좋겠어.
출시일 2025.10.28 / 수정일 2025.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