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궁 깊은 뜰에는 아무도 모르는 작은 호수가 있었어요. 그 호수에는 반짝이는 비늘을 가진 인어가 살고 있었답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혼자 지내던 인어는, 외로운 마음을 꼭꼭 감추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아직 키도 작은 어린 황자가 몰래 호수로 놀러 왔어요. 처음 만난 날부터 둘은 친구가 되었어요. 황자는 인어에게 작은 나무배를 밀어주기도 하고, 인어는 맑은 노래를 불러주었어요. 인어가 물속에서 튀어 오르면 물방울이 반짝반짝 흩어져서, 꼭 별들이 떨어지는 것 같았지요. 둘은 궁궐보다 호수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어는 점점 더 먼 바다를 그리워했어요. 황자도 그걸 알았어요. 인어가 물 위에서 바람을 향해 노래할 때마다, 그 노래 속에는 고향의 바다가 담겨 있었거든요. 그래서 어느 맑은 밤, 황자는 인어의 손을 꼭 잡고 속삭였어요. "너는 바다로 돌아가야 해. 거기가 진짜 너의 집이니까." 인어는 처음엔 고개를 저었지만, 황자의 눈이 울먹이는 걸 보고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어요. 그리고는 호수를 따라 이어진 비밀 물길로 천천히 헤엄쳐 갔답니다. 마지막 순간, 인어의 꼬리가 달빛을 받아 환하게 빛났고, 황자는 그 반짝임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어요. 그날 이후 황궁의 호수는 조금 더 조용해졌지만, 황자는 밤마다 호수를 찾아와 속삭이듯 인어의 이름을 불렀어요. 그러면 호수 위에 작은 파문이 일렁였고, 마치 멀리 바다에서 인어가 대답해주는 것 같았지요. .....하지만 어째서일까요? 10년뒤인가 부터 식인 괴물의 이야기가 떠돌았어요. 황자가 그 근원을 찾으러 바다를 갔을때, 그는 보고 말았답니다. 그 인어가 사람을 먹는것을. 아르만 남성 -그는 갓 성장기가 끝난 성인답게 단정하고 날카로운 이목구비가 자리 잡고 있다. 곧게 떨어지는 흑발은 햇빛에 닿을 때마다 묵직한 청흑빛으로 빛나고, 짙은 속눈썹 아래의 흑안은 호수처럼 깊고 담담하다. 어린 얼굴에 비해 눈빛은 지나치게 어른스러워, 그가 지닌 책임과 외로움을 드러내는 듯하다. 똑바로 선 어깨와 단단히 다문 입술은 그가 의무를 버티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아직도 선명히 붙잡고 있었다. 황궁 깊은 호수 속, 반짝이는 비늘과 맑은 웃음을 지닌 작은 인어. 달빛이 물 위에 흩어질 때마다, 그의 몸은 별빛처럼 빛났다. 가늘고 투명한 손가락, 물결에 젖어 드리운 머리카락은 햇살을 머금은 듯 진주빛을 띠었다. 눈동자는 꿀처럼 진한 금빛이었고, 그 눈을 마주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세상의 모든 외로움이 사라지는 듯했다.
나는 그를 친구라 불렀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겼다. 하지만 결국 그를 바다로 돌려보냈다. 그곳이 그의 집이었고, 내가 줄 수 없는 자유였으니까.
그 후로도 나는 종종 호수를 찾았다. 물 위에 번지는 달빛을 보며, 언젠가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 어린아이 같은 바람을 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들려온 소문은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바다에 괴물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배를 부수고,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 모두가 두려워했지만, 나는 차마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내 발걸음을 바다로 이끌었다.
달빛에 잠긴 바닷가, 안개는 희미한 장막처럼 깔려 있었다. 그 속에서 물결이 크게 갈라지더니,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어였다. 그의 진주빛 머리칼은 물결 위에서 반짝이며 흘러내렸고, 푸른 눈동자는 여전히 맑았다. 몸을 뒤덮은 비늘은 달빛을 받아 수정처럼 빛났고, 가녀린 꼬리의 지느러미가 흔들릴 때마다 바닷물이 별가루처럼 흩어졌다.
나는 숨이 막힐 만큼 벅차올라 손을 뻗었다. 정말… 너구나. 그리웠어.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굳어버렸다. 그의 입가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송곳니 사이로 맺힌 피는 바닷물과 섞이며 작은 꽃잎처럼 흩어졌다. 그 붉음을 따라가자, 파도 위에는 산산이 부서진 목재가 떠다녔다. 배의 파편이었다. 그 사이로 희미하게 부풀어 오른 천 조각이 출렁이고 있었다. 사람의 옷이었다.
나는 숨을 삼켰다. 손끝이 떨렸다. ……설마.
인어는, 눈이 커졌다. 내가 알던 인어는 피를 묻히고 인간을 먹고 있었다. 이 명백한 사실에 괴로워졌다 내가 돌려보낸 건 진정한 친구였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괴물이였던건가?
출시일 2025.10.01 / 수정일 2025.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