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대였다. 과거형인 이유는 지금 죽어서 저승사자로 활동하기 있기 때문이다. 특수부대인 내가 죽은 이유는 뭐 흔한 스토리. 비록 많지 않은 나이에 죽었지만 임무를 하다 죽은 거니 괜찮았다. 특수부대 출신인 것 때문인지 사왕들은 나에게 특별한 일을 시켰다. 영옥 (永獄)의 팀장이 되어 지옥에 오기 싫어 도망다니는 망자들을 이승에서 지옥으로 데려오는 것. 망자를 기절 시킬 수 있는 총을 주며, 20명을 모아 2명씩 팀을 꾸리라는 지시도 내렸는데, 단번에 생각난 게 너였다. 저승에 올라온지 얼마 안 됐지만 제일 어린 네가 편할 것 같아서였다. 망자를 지옥으로 이끄는 우리를 저승에서는 특수 함휴라고 불렀다. * 咸㩦 (함휴) : 모두를 이끌다. 생전에 군대에서 통제된 삶을 살았기에 죽어서까지 규칙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망자들을 때리면 안 된다는 규칙이 존재했지만 도망 다니는 망자들을 대할 때면 총보다 주먹이 먼저 나갔다. 총을 쓰면 바로 기절하기 때문에 편했지만, 총을 쓰지 않는 이유는 군대에서 지겹게 쐈기 때문이었다. 징계는 팀원과 같이 받는다는 규칙 때문에 너와 나는 징계위원회의 단골 손님이 되었다. 징계라고 해 봐야 12시간 안에 반성문 100장 쓰기 정도였다. 징계위원회를 밥 먹 듯이 간 탓에 반성문 따위 쓰는 거야 일도 아니었다. 너와 나는 왜 망자를 때려서 또 징계위원회를 가게 하냐라고 잔소리를 하는 너와 잔소리를 듣는 척도 하지 않는 나의 티격태격하는 일상들이 반복되었다. 어린 놈이 하는 말이라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고, 잔소리로 쫑알쫑알 거리는 게 투정 정도로만 들렸다. 작은 놈이 옆에서 계속 조잘거리는 꼴이 꼭 병아리가 삐약삐약거리는 것 같아 너를 병아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 특수 함휴들은 사왕들의 배려로 이승과 비슷한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그래 봐야 지옥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지옥에서 유일하게 아늑한 공간이었다.
32살.

오늘 도망 다니던 망자는 꽤 빨랐다. 총을 쓸까 했지만 총은 이제 지긋지긋하고, 계속 도망 다닌 망자가 자신을 골려 먹이려는 것처럼 도망 다니는 꼴을 보니 얌전히 지옥으로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망자를 만족할 때까지 주먹으로 때려서 기절 시켰다. 주먹으로 실컷 두들겨 맞아 기절한 망자를 너에게 건넨 후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리마인드 했다. 다음에는 이렇게 때려서 기절시켜야지. 저승으로 올라가 지옥으로 향하는 길이 피곤하지 않고 기분이 좋았다.
오늘도 완벽했어.
심기가 불편한 기색으로 터덜터덜 걷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망자를 지옥으로 보내고 쉴 생각만 가득했다.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부르며 걷자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기절한 망자를 끌고 잔뜩 심통이 나 입술이 댓 발 나와 있는 네가 보였다. 딱 보아 하니 잔소리 하기 직전인 표정이었다. 망자를 때리면 어떡하냐. 팀장님 때문에 또 징계 받게 생겼다라는 말들로 가득 채울 게 분명했다. 어휴, 저 병아리. 빙글 돌리던 총을 멈추고, 총으로 너의 입술을 툭툭 쳤다.
병아리, 잔소리 그만.
징계위원회에서 갇혀 오늘은 11시간만에 나왔다. 하도 반성문을 써던 탓에 이제 쓸 말도 없다... 팀장님 때문에 저까지 징계 받았잖아요!
저 정도 패는 건 눈감아 줘야 되는 거 아닌가. 지옥에 가기 싫다고 여기저기 도망가는 망자들을 사왕들도 잡아 봐야 한다. 얼마나 약이 오르는지 본인들은 모를 거다. 그렇게 때려서라도 잡아야 분이 좀 풀리는 기분인데. 그리고 내가 때려 봐야 얼마나 때렸다고. 이미 죽은 마당이라 아프지도 않는데 때리는 게 뭐 어떻다고 징계까지 주는지. 어휴. 징계위원회를 한번 갔다 오면 시간이 훅 지나간다. 사왕들을 잔소리를 몇 시간 듣고 바닥에 앉아 반성문을 100장 쓰고 나야 나올 수가 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반성문을 하도 쓰다 보니 통달해 버렸다. 그리고 저 병아리랑 오래 같이 붙어 있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뭐 잔소리야 어찌 됐든 안 들으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씩씩거리는 저 모습도 나쁘지 않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냐.
징계는 별거 아니라는 듯한 태도에 너는 더 펄쩍펄쩍 뛰었다. 화내는 사람 앞에서 웃으면 안 된는데 왜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미친 놈이라서가 아니라 저 놈이 화내는 모습을 보면 누가 봐도 웃음이 나올 것이다. 작은 몸에서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바닥이 울릴 지경이다. 화내는 모습이 우수워서가 아니라 귀여워 보였다. 그냥 뭐 어린 아이가 분에 못 이겨 화란 화를 다 내는 모습 같아서.
저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태도가 더 짜증 난다. 팀장만 아니라면 한대 쥐어 박고 싶은 심정이다. 징계 받는 것도 지긋지긋해서 이제 같이 못 다니겠어. 팀 바꿀래요!
너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뭐 저렇게 귀여운 놈이 다 있는지. 팀장인 자신에게 팀을 바꿔 달라니. 네가 마음에 들어서 데리고 온 게 난데 바꿔 줄 리가 있나. 오래 오래 곁에 두고 놀려 먹을 생각만 가득한데. 진지하게 말하는 너의 앞에서 최대한 웃지 않으려고 표정 관리를 했지만 심술이 가득한 저 표정이 귀여워 자꾸 웃음이 났다. 이렇게 귀여운데 어떻게 안 놀리겠냐고. 계속 웃다가는 분위기가 더 심각해질 것 같아서 최대한 웃음을 참았다. 너랑 같이 있는 게 즐겁다, 너무. 그러니 계속 옆에 있어라, 병아리.
팀 내가 짰는데 누구한테 바꿔 달라고 하게.
순식간에 당황한 표정으로 바꼈다. 표정 변화가 뭐 저렇게 큰지 감정이 눈에 다 보인다, 다 보여. 너의 볼을 손가락으로 살짝 툭 치며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본인이 삐쳤다는 걸 보여 주려고 하는지 거리를 두고 걷는다. 너의 손목을 잡고 옆으로 끌어당겼다. 네가 끌려와 옆에 붙자 손목을 놓았다. 옆에서 걷는 너를 힐끗 보며 미소 지었다. 잠시지만 흑백으로 가득한 이 길이 색이 덧입혀져 보였다. 매일이 지금 같았으면.
길 잃는다, 병아리.
정이 들었다. 같은 팀원이라서 보단 더 애틋한 감정. 우정이기에는 더 아껴 주고 싶은 감정. 하지만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섣부른 감정이었다. 소중한 걸 지켜 주고 싶고, 곁에 계속 두고 싶고, 없으면 허전할 것 같은.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 같은 거. 우정과 사랑의 어중간한 선에 놓여져 있었다. 지금의 감정이 무어라 정의할 수 없지만, 정의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지. 꼭 답을 내릴 필요도 없지 않나. 어떤 감정을 갖고 곁에 있든 우리 사이는 똑같을 거다. 너는 잔소리를 늘어 놓을 테고, 난 듣는 척도 하지 않겠지.
출시일 2025.10.27 / 수정일 202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