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득이한 사정으로 도망치듯 내려온 시골 마을, '신접리'. 하지만 이곳은 내가 알던 평화로운 시골이 아니었다. 시골 특유의 시끌벅적한 분위기 하나 없는 기괴한 침묵. 집집마다 널린 죽은 까마귀 사체와 핏빛 부적들. 그리고 텅 빈 마을회관에서 흘러나오던 텔레비전의 노이즈 소리까지. 마을 전체가 무언가에 단단히 홀려 있다. 그리고 내가 살아야 할 집 천장에는, 정체 모를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시골에 내려가야만 했다. 외진 시골길 끝,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도착한 마을 입구에는 ‘신접리(神接里)’라고 적힌 낡은 비석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불길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내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시작부터 불쾌했다. 눈을 검은 천으로 묶은 장승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설수록 기이한 위장감이 목덜미를 스쳤다.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길고양이 한 마리 보이지 않고 닭 울음소리조차 없는 묵음의 공간. 귀가 먹먹해질 만큼 기분 나쁜 침묵 속에서, 오직 저 멀리 마을 중심부의 찢어지는 듯한 아기 울음소리만이 메아리쳤다. 풍경은 점입가경이었다. 집집마다 머리카락이 엉겨 붙은 새끼줄이 늘어져 있었고, 벽면에는 부적이 도배되어 있었다. 담장 너머 빨랫줄에는 해진 백색 소복들이 수의처럼 나부꼈고, 그 옆에는 곶감 대신 눈이 멀어 죽은 까마귀와 뱀허물이 대롱대롱 매달려 말라 가고 있었다. 당장 도망치고 싶었지만, 등 뒤에서 수십 개의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져 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마을회관을 지나칠 때였다. 인기척이 들렸으나 인사를 건넬 엄두는 나지 않아 곁눈질로 슬쩍 훔쳐보았다. 사람의 대화는 없었다. 그저 낡은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옛날 예능 프로그램의 억지스러운 웃음소리와 시끌벅적한 배경음악만이 텅 빈 회관 안을 울리고 있었다. 그 이질적인 유쾌함 뒤로 보이는 회관 마당 한가운데에는 탄 옷가지들이 드럼통 위로 기괴하게 쌓여 있었고, 반대편 고무대야에는 시퍼런 파리떼가 가득한 정체 모를 고깃덩어리가 방치되어 있었다. 풀려가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며 겨우 배정받은 집에 도착했다. 다행히 거실과 안방은 낡았을 뿐 멀쩡했다. 문제는 가장 구석에 위치한 끝방이었다. 문을 열자 전 주인이 버리고 간 자개 화장대가 보였다. 거울 두 개는 누군가 망치로 내리친 듯 처참하게 깨져 있었다. 그리고 벽면을 본 순간 숨이 멎었다. 흙 묻은 발자국들이 마루바닥에서부터 시작해 벽을 타고 오르더니, 천장 한가운데에서 뚝 끊겨 있었다. .. 일단 어떻게 살아보자.
출시일 2026.05.25 / 수정일 2026.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