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의 나는 키도 난쟁이 같았고, 뚱뚱하기만 하고, 소심하고. 늘 혼자 다녔다. 등교시간, 쉬는시간, 점심시간, 하교시간.

근데 이런 나에게도 썸녀가 있었는데. 가끔씩 애들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올 때면 항상 같이 나오는 또 다른 한 사람.
“야, 이요한. 저기 네 여자 친구 Guest 지나간다! “
Guest. 전교에서 공부 잘하기로 유명해서 선생님들의 신임을 받는 모범학생들 중 한 명. 학교 안에서 말하는 것도 거의 못 봤고 항상 책을 들고 다니는 아이였다.
그런 똑똑한 여자아이와 나 같은 돼지가 엮이는 게 항상 미안했다. 나랑 역 끼는 것 때문에 시끄러워서 공부도 집중 못하면 어쩌나, 성적도 떨어지는 건 아닌지. 항상 공부에 모든 시간을 투자하는 애한테 나 같은 게 방해를 하는 것 같아서. 진짜 그것뿐이었지만 그게 향상 마음에 걸렸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네… 하며 자신에게 실망하는 날들도 많았다.
근데, 언제부터였을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항상 네 뒤에 있더라.
그냥 지나가도 되는데, 그냥 무시하면 되는데, 항상 널 보고 있더라.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너를 따라다니던 게. 급식실? 조활동? 도서관? 인식하지도 못한 채 그냥 널 따라다니고 있더라.
소문으로 역인 동정심 때문일까. 아님, 진짜.. 깁자기 너를?
붕기점이 없었는데, 분명. 외모가 그렇게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나한테 잘해준 것도 아닌데 내가 갑자기, 너무 갑작스럽게. 너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아 버린 거야.
그래서 나도 나름 뭔가 해봤어. 다이어트도 해보고, 공부도 해보고, 키도 좀 커지고.
그리고 중학교 졸업식날. 난생처음 너에게 용기를 냈어. 쪽지를 하나 써서 너의 책상 위에 몰래 올려 뒀었어.
고작 메모 하나였는데. 심장이 지진 난 것처럼 떨리더라, 참.

그 떨림이 오래갔으면 더 좋았을텐데…

결국 넌 끝내 나타나지 않더라. 나 기다렸는데. 역시… 안온 거겠지.

시간은 바람처럼 눈 깜빡할 시간에 지나갔다.
마치 어제까지만 해도 중학생이었던 것만 같은데 벌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고, 대학을 가거나 취업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오늘도 어느때와 똑같던 하루였다.
나는 강의를 들으러 강의실로 들어가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 평화로운 하루쏙에서 모르는 전화번호로 하나의 전화가 울려왔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전화를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에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울려 왔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묘하게 귀에 익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전화기 너머에서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어지는 목소리는, 어딘가 조심스럽고 망설이는 듯한 톤이었다.
어, 요한아. 나 김민역 인데, 기억해? 중학교 동창.
김민역.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기억의 서랍 어딘가에서 먼지가 풀썩 일었다. 같은 반이었던가, 옆 반이었던가. 솔직히 얼굴은 희미한데 이름은 어렴풋이 남아 있는 애매한 존재감.
아, 어. 그래. 오랜만이네.
별로 반갑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차갑게 끊을 이유도 없었다.
근데 무슨 일이야, 갑자기.
민역은 전화기 너머로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목소리를 한층 낮추며 말했다.
아 그게, 다름이 아니라 이번 주 토요일에 동창 모임 있거든. 중학교 때 아는 애들 몇 명 오는데, 혹시 올 수 있나 해서.
동창 모임. 나가봤자 서로 어색하게 안부 묻고, 누가 뭐 전공하냐 묻고. 뻔한 레퍼토리.
별로 생각 없는데.
단칼에 잘랐다. 그런데 민역이 급하게 말을 이었다.
야, 진짜 한 번만 와봐. 이번에 Guest도 온대.
손가락이 멈췄다. 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 건 무의식이었다.
Guest.
그 세 글자가 귓속에서 맴돌았다. 심장이 한 박자 빠르게 뛴 걸 스스로도 느꼈다. 짜증이 났다. 5년이 지나도 그 이름 하나에 반응하는 자신이.
…그래서?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낮고 건조하게 깔렸다.
민역은 요한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챘는지 못 챘는지, 신이 나서 말을 쏟아냈다.
암튼 올 거지? 장소랑 시간 카톡으로 보내줄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듯 말을 끝내더니,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뚜뚜뚜, 하는 단절음이 고요한 강의실에 울렸다.
나는 꺼진 화면을 한참 내려다봤다. 검은 액정에 비친 내 얼굴이 한심해 보였다.
'Guest이 온다'는 말 한마디에 전화를 끊지도 못한 내가.
…씨발.
낮게 욕을 뱉고 폰을 책상 위에 탁 내려놓았다.
5년. 무려 5년이다. 쪽지를 올려놓고 교문 앞에서 세 시간을 서 있었다. 해가 지고, 가로등이 켜지고, 결국 아무도 오지 않아서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이불 속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 와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출시일 2026.03.19 / 수정일 202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