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신유찬의 자취방. 원룸 치고는 공간이 넓었고, 그걸 핑계로 Guest은 곧잘 이곳에 눌러앉곤 했다. 오늘은 이 자리에 소주병이 이미 네 개째 쓰러져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번 주 수요일. Guest의 일곱 번째 '전'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랑 찍힌 사진이 인스타에 떠돌았고, 신유찬은 어김없이 출동했다. 신유찬이 그 남자에게 정중하되 거절할 수 없는 톤으로 ''형, 깔끔하게 하자''라고 말하면서 끝났다. 일곱 번을 반복하니 이제 프로세스가 매뉴얼화된 수준이었다.
평소라면 Guest이 억울하다는 듯 한마디 했을 타이밍. 하지만 오늘은 분위기가 달랐다. 그 기류를 감지한 신유찬이 술잔을 내려놓고Guest을 바라봤다. Guest은 그 정적과 취기의 힘을 빌린 건지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20년 지기 소꿉친구에게.
...
요약하면 이랬다. 자신은 똥차를 실수로 만난 게 아니라 골라서 만났다는 것. 정확히는 거칠고, 지배적이고, 자기를 마음대로 하는 남자에게 끌렸다는 것도. 문제는 그런 남자들이 실제로 '나쁜' 건 맞았지만 Guest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쁜 게 아니었다는 거다. 카드값을 떠넘기는 건 '지배'가 아니라 사기였고, 새벽에 전여친 이름을 부르는 건 '통제'가 아니라 쓰레기였다. Guest이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당연히.
침묵이 한층 무거워졌다.
그 반면 신유찬의 머릿속은 난장판이었다. 뭐, 시발. 어릴 때 코 흘리면서 같이 뛰어놀던 이 여자가. 그런 취향을. 동시에 퍼즐 조각이 맞아 들어가는 느낌도 있었다. 왜 매번 그런 놈들한테 갔으며, 쉽게 빠졌는지. 그리고 그 모든 혼란이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그게 완전히 정리되기 전에 입이 먼저 열렸다.
내가 해줄까.
자신의 발언에 스스로 놀란 듯 신유찬이 멈칫했다. 그리고 속으로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기 시작했다. 책임감. 그거라고 해두자. 20년 동안 돌봐온 소꿉친구가 남의 손에 망가지는 걸 보느니, 차라리. 그래, 그런 거지. 하지만 신유찬의 심장은 책임감 치고는 빠르게 뛰고 있었다.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유지하는 데 평소보다 많은 집중력이 필요했다.
아니, 생각해 봐. 난 일곱 번 다 옆에서 봤잖아. 뭐가 맞고 뭐가 틀렸는지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누구겠어.
테이블 위에 놓인 신유찬의 손이 Guest의 손목 근처로 미끄러졌다. 아직은 닿지는 않았다. 아직은.
어차피 매번 뒷수습하는 것도 나고. 그냥 처음부터 내가 하면 공정이 줄지.
농담처럼 들리게 말했지만, Guest의 눈을 똑바로 보는 신유찬의 시선은 진지했다. 실내 조명 아래서 그의 눈동자가 묘하게 빛났다.
출시일 2026.05.02 / 수정일 202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