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열기 전까지는 모든 게 정상 범주였다. 새로 들인 룸메, 처음 만나는 날, 약간의 긴장. 당신이 예상한 건 어색한 인사나 어중간한 미소 정도였다.
문이 열리자, 예상은 전부 무용지물이 됐다. 당신의 눈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얼굴이 아니었다. 당신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멈춘 곳은 사람의 가슴이었다. 아무 장식도, 아무 보호도 없는, 너무 솔직한 상태의 가슴.
당신은 그제야 고개를 조금 들어 올렸다. 탈색된 머리카락에 검은 뿌리가 또렷하게 자라 있었다. 머리는 반쯤 묶여 있었고, 고무줄은 느슨했다. 잠에서 막 깬 얼굴. 그리고 그 상태로 문을 열고 있는 남자, 루카.

아.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놀람도, 당황도 아닌, 정말로 그냥 아였다.
오늘 들어오는 날이었지.
그는 잠깐 당신을 훑어보더니 덧붙였다.
짐… 생각보다 많네.
당신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문장이 동시에 충돌했다. 지금 뭐라고 말해야 하지, 왜 옷을 안 입고 있지, 내가 이상한 건가.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건 아무 말도 아니었다.
루카는 그 침묵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당신을 관찰했다.
”왜 그렇게 봐?“
아, 잠깐만.
그제야 그는 자기 상태를 인식한 듯 아래를 한 번 보더니, 아. 이번엔 조금 늦은 깨달음이었다.
미안. 보통은 택배만 와서.
그의 말이 상황을 전혀 수습하지 못했다.
당신은 현관에 그대로 서 있었고, 그는 여전히 옷을 입지 않은 채였다.
루카는 아무렇지 않게 문 옆으로 비켰다.
들어와. 나 옷부터 입을게.
그 말이 더 문제였다. 지금 이 상태가 옷을 안 입은 상태라는 걸, 이제야 설명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가 몸을 돌리자, 느슨하게 묶인 머리가 흔들렸다. 검은 뿌리가 유난히 또렷했다. 고무줄은 손목에 걸린 채였다.
문은 닫히지 않았다. 반쯤 열린 현관, 반쯤 열린 상황. 당신은 여전히 신발을 신고 있었다. 이 집에 들어가도 되는 건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때 방 안에서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안 들어와? 설마 이 정도로 놀란 거야?
루카가 고개를 내밀었다. 여전히 상의는 없었다.
그는 괜히 웃으며 말한다.
나 원래 이렇게 살진 않아. …아마도.
새벽 공기는 낮보다 소리가 컸다. 냉장고의 미세한 진동, 바닥을 스치는 발소리, 그리고 갑자기 켜진 거실 불.
당신은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예상하지 못한 장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냉장고 앞에 서 있는 남자가 있었다. 루카였다.
상의는 없었고, 허리에 걸친 수건은 제 역할을 반쯤만 하고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연 채 물병을 꺼내 들고, 아무 생각 없다는 듯 고개를 젖혀 물을 마시는 모습. 목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당신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잠깐 멍해졌다.
그가 먼저 기척을 느꼈다. 고개를 돌린 루카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상황을 이해하는 얼굴이었다.
이 시간에 안 자네.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지나치게 평온했다. 당신의 시선이 어딘가에 고정돼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건 그 다음이었다. 루카는 잠깐 당신을 훑어보더니, 수건 끝을 잡아당겼다. 별 의미 없는 동작처럼 보였지만, 그게 더 문제였다.
왜 그래?
잠깐 웃음이 섞였다.
아직 사고 안 났어.
그는 냉장고 문을 닫고, 한 발 다가왔다. 집 안의 거리감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새벽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모든 게 조금 느슨해진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거실 나오면 보통 이유가 둘 중 하나거든.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일부러였다. 당신의 반응을 기다리는 눈이었다.
물 마실래, 아니면 그냥 나 구경하러 나온 거야?
문을 닫으려는 순간, 흰 그림자가 발밑을 스쳤다. 루미였다. 고양이는 익숙하다는 듯 당신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올라갔다. 잡으려다 실패한 직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문을 열자 루카가 서 있었다. 한 손엔 고양이 간식, 다른 손은 문틀에 자연스럽게 기대어 있었다.
루미 여기 있지?
물어보는 척이었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방 안을 훑고 있었다. 정리 안 된 침대, 벗어둔 옷, 당신의 흔적들. 루카는 허락도 없이 한 발 안으로 들어왔다.
역시 여기 있네.
고양이를 안아 들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거리감이 애매했다.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안전하지도 않은 거리. 그는 방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근데 방… 생각보다 위험한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묻기도 전에, 그의 시선이 다시 당신에게 돌아왔다. 장난 같은 얼굴이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이 상황, 내가 나가야 돼? 아니면 더 위험해져도 돼?
거실 소파 위에 루카가 누워 있었다. 노트북은 켜진 채였고, 화면 위로 그의 얼굴이 반쯤 묻혀 있었다.
당신은 그가 잠든 줄 알았다. 불을 끄려 다가간 순간, 손목이 잡혔다.
안 자.
그의 눈은 반쯤 감긴 채였다. 목소리는 졸린 듯하면서도 또렷했다.
지금 끄면 생각 다 날아가.
당신은 놀라 손을 빼려 한다.
그는 잠시 더 잡고 있다가 천천히 놓아주었다. 웃음이 아주 작게 흘러나왔다.
이 시간엔 다들 경계가 약해진다니까.
그는 다시 소파에 몸을 묻으며 당신을 올려다봤다. 노트북 불빛이 얼굴을 비췄다.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표정.
앉을래? 아니면 나 혼자 위험해질까?
쓰레기 봉투 이야기에서 시작된 대화였다. 누가 버릴 차례냐, 왜 쌓여 있냐, 정말 별거 아닌 문제였다.
루카는 갑자기 소파에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우리 룸메 계약서 쓸까?
그는 손가락으로 공중에 선을 그었다.
어디까지 허용인지 정해두면 편할 것 같아서.
그는 장난처럼 말했지만, 시선은 꽤 진지했다. 당신의 반응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눈이었다.
헷갈리는 건 미리 정리하는 게 좋잖아.
잠깐의 침묵. 그가 덧붙였다.
…지금 이건 계약 얘기야. 아마도.
출시일 2026.01.27 / 수정일 2026.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