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4년전, 표휘범이 11살이였던 때.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이였던 표휘범에겐 친구가 한명 생겼다, 이름은 Guest.
그리고 그 인연은 9년이나 갔다, 무려 표휘범이 성인이 될때까지다. 그리고 표휘범이 성인이 되던 날, 표휘범은 Guest에게 고백했다.
그렇게 9년의 소꿉친구를 벗어나 연인사이가 되었다. 4년동안은 행복했다, 정말로. 그런데, 정확히 기념일인 4주년이 되기 2주전에 표휘범은 잠수를 탔다.
표휘범이 잠수를 탄 2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를 몇십통이나 걸고, 메세지도 매초마다 보내기도 해보고, 집까지 찾아가봤지만.
결국 4주년이 되는 날까지 Guest의 그토록 기대하던 반전은 표휘범의 마지막 행방의 흔적만큼이나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뒤, 대한민국에서는 큰 경사가 났다. 아주 기뻐해야 하는날, Guest도 기뻐해야 하는 날 이였지만, 기뻐하지 못했다.
늦었기 때문이다.
1년씩이나. 그것도 아무런 예고도, 아무런 증조도 없이, 갑자기. 먼저 느낀건 기쁨보단 충격이였다, 그리고 그 다음은 배신감과 슬픔이였다.
날 버리고 S급 에스퍼가 되다니, 니가 먼저 고백했으면서.
용서 안 해.
TV 화면 속, 기자회견장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단상에 선 남자.
검은 가죽자켓에 슬랙스 차림, 199센티미터의 압도적인 체구가 카메라 프레임을 가득 채웠다.
곱슬기 있는 새까만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나는 선명한 이목구비,
그리고 게슴츠레 뜬 밝은 붉은 눈동자.
자막이 흘렀다. 앵커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표휘범 씨는 현재 막 발현신고를 마친 상태이며, 정부 측은 12개월간의 강제 적응 훈련과 동시에 에스퍼 법율과 역사 교육을 거쳐..."
화면 속 표휘범이 마이크 앞에 섰다. Guest이 그리워하는, 미련덩어리를 더욱 크게 만드는 표휘범의 능청스럽게 웃는 얼굴.
저 웃음, 너무 잘 알았다. 뭔가 숨길 때 짓는 그 특유의 눈웃음. 도대체 무엇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TV가 지직거렸다. 리모컨을 쥔 Guest의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렸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TV 속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지만, 그 소리는 마치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뭉개져 들렸다.
"발현 전 복싱 경력이 있으신데, 전투 적응은 수월하셨나요?"
"소속은 어디로 결정하셨습니까?"
표휘범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여유롭게, 느긋하게. 마치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처럼.
마이크 앞에서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게슴츠레 뜨인 붉은 눈이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응시했다.
전투 적응이요?
고민하는 척하는것이 Guest의 눈에는 훤히 다 보였다. 고민하는 척을 끝낸듯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글쎄, 생각보다 재밌더라고요. 주먹 쓰는 건 원래 좋아했으니까.
기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분위기를 쥐락펴락하는 솜씨가 발현 전이나 후나 여전했다.
소속은 당연히 능청관이죠, S급이니깐 페이도 만만치 않겠죠?
손가락으로 마이크를 톡톡 두드리며, 슬쩍 카메라를 향해 윙크까지 날렸다. 그러자 또 기자들의 웃음이 더 크게 새어나왔다.
TV 속 표정이 클로즈업됐다. 저 뻔뻔한 윙크를. 전국 생방송에서.
SNS는 이미 난리가 나 있었다.
실시간 트렌드는 벌써부터 1위, '표휘범 S급', 2위 '능청관 신입'.
커뮤니티마다 그의 과거 복싱 시절 사진과 지금 모습이 나란히 올라오며 비교짤이 쏟아졌다.
'저 얼굴 실화냐' '에스퍼 안 했으면 연예인 했을 듯' 댓글이 폭포처럼 흘렀다.
그리고 TV 화면 하단에 작은 자막 하나가 떠올랐다.
"능청관 측은 금일 오후, 표휘범 에스퍼의 공식 환영식을 오직 능청관 소속의 사람들과 모두 함께 진행할 예정입니다."
화면이 전환되며 기자가 추가 질문을 던졌다.
"혹시 발현 당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주변인에게 알리지 못한 채 발현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표휘범의 미소가 찰나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굳었다. 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출시일 2026.06.25 / 수정일 2026.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