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존재하지 않는 이 기묘하고 거친 세계에서, 나는 귀한 오메가라는 성별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그 축복 같은 성별조차 사생아라는 비천한 굴레 앞에서는 반쪽짜리 가치에 불과했다.
귀족이었던 대디는 처음에 내가 오메가라는 사실을 알고 크게 기뻐했다.
가문의 지위를 높이거나, 강력한 알파와의 결합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디는 내게 온갖 귀족 교육을 시키기 시작했다.
예법, 학문, 수사학, 그리고 사교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온갖 지식들.
그러나 내게는 그것들을 감당할 만한 재능이 전혀 없었다.
글자를 한 자라도 더 외우게 하려고 대디는 회초리를 들었다.
가느다란 종아리에 붉은 핏방울이 맺히고, 바닥에 뚝뚝 떨어질 때까지 맞아가며 눈물로 글을 배웠다.
하지만 기초적인 수준을 넘어 상위 교육으로 올라갈수록 나는 서서히 뒤처졌다.
복잡한 정치학 책을 이해하지 못해 멍하니 앉아 있는 나를 보며 대디의 눈빛은 서서히 차갑게 식어갔다.
기대가 깊었던 만큼 실망도 거대했다. 한편, 또 다른 아버님이었던 파파는 애초에 돈과 권력에만 눈이 먼 사람이었기에, 재능마저 없는 사생아인 나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저택 안에서 투명인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디가 마침내 친동생을 낳았다.
나와는 달리 머리가 영특하고 모든 면에서 재능이 넘쳐나는 아이였다.
완벽한 후계자의 등장은 나의 비참한 퇴장을 의미했다.
가문에서 완전히 쓸모없어진 나는 결국 6번가라 불리는, 솔 '사생아의 거리' 로 가차 없이 버려졌다.
그곳은 다른 귀족가의 하인으로 육성하여 판매하는 지옥 같은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다시 귀족의 비위를 맞추는 하인이 되기 위한 혹독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둔하고 유약했던 내게 하인으로서의 재능이 있을 리 만무했다.
차라리 귀족가에 있을 때는 눈치라도 보며 숨을 곳이 있었지만, 이곳은 자비가 없는 밑바닥이었다.
청소를 못 한다고 맞고, 걸음걸이가 어설프다고 맞았으며, 그저 살아 숨 쉬는 매 순간이 매질의 연속이었다.
집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살점이 터져 나가도록 맞고 나니 온몸에 성한 구석이 없었다.
매일 밤 밀려오는 괴로움과 공포 끝에, 나는 결국 교육을 받던 도중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갔다.
차가운 돌바닥을 맨발로 달리며 생각했다. 대체 누구의 잘못이라고 원망해야 할까.
나를 버린 대디와 파파를 원망해야 할까, 아니면 나를 때리는 솔의 거리 사람들을 증오해야 할까.
하지만 결국 화살은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재능이 없고 무능한 탓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똑똑했더라면, 하물며 청소라도 잘하는 하인이었더라면 이런 비참한 꼴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그날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절망적인 날이었다. 갈 곳 없는 발걸음으로 어둡고 구석진 골목길로 숨어들어 가 무릎을 껴안고 훌쩍였다.
설상가상으로, 하늘은 나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이상한 날씨를 선보였다.
*분명 머리 위는 햇빛이 쨍쨍하게 내리쬐며 맑은데, 나를 놀리듯이 후두둑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 맑은 하늘에서 내리는 가혹한 비를 맞으며, 문득 내 꼴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세상 모두가 나를 버렸고, 하늘마저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억눌러왔던 서러움이 둑이 터지듯 폭발하며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얼마나 소리 죽여 울었을까.
빗소리 사이로 바스락거리는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화들짝 놀란 눈으로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번듯한 제복을 차려입은 수인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는 커다란 덩치로 골목길의 들이치는 비를 막아선 채,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내 앞을 막아선 순간, 거짓말처럼 내 몸 위로 쏟아지던 비가 멈추었다.
그가 우산을 씌워준 것인지, 아니면 그 거대한 신체로 비를 가려준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 세상의 비가 멎었을 뿐이었다.
그는 젖어 엉망이 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원하는 것이 있나?"
그 질문이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실소조차 나오지 않았다.
원하는 것?
나처럼 버려지고 짓밟힌 나에게 감히 바랄 수 있는 소원 따위가 남아있을 리 없었다.
나는 그를 쏘아보며 단언하듯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런 거 없어요."
나의 날 선 거절에도 그는 기분 나빠하기는 커녕, 무엇이 그리 기쁜지 눈꼬리를 접으며 활짝 웃었다.
그 눈부신 미소에 잠시 넋을 잃은 나를 향해, 그는 장난스러우면서도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어이없는 제안을 건넸다.
"그럼, 원하는 것이 생길 때까지 만나자구나."
황당한 소리였지만, 당장 마음 둘 곳도 없고 붙잡을 끈도 없던 나는 얼떨결에 그 기묘한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너는 정말로 매일같이 나를 찾아왔다.
솔의 거리의 구석진 골목길에 제복을 입은 네가 나타날 때마다 주변의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너는 내게 값비싼 보석이나 화려한 옷 같은 선물들을 건네기도 했고, 좋은 곳으로 데려가 맛있는 음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귀족가에서 자라 물질적인 풍족함을 이미 겪어본 나에게 그런 것들은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네가 준비한 데이트 역시 그리 즐겁지 않았다. 무언가를 보고 기뻐하거나 즐거운 감정을 만들어내기에, 내 영혼은 이미 너무나 지치고 닳아 없어진 상태였으니까.
매번 무덤덤하거나 시니컬하게 반응하는 나를 보면 포기할 법도 한데, 너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더 다정한 미소를 띠고 내 앞에 나타났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아무 표정 없이 앉아 있는 나를 바라보던 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커다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살면서 내게 닿았던 손길은 오직 고통을 주는 매질이나, 거칠게 잡아끄는 폭력뿐이었다.
타인의 손이 이토록 조심스럽고, 따뜻하게 내 머리칼을 쓸어내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처음 겪어보는 온기 어린 접촉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온몸을 지배하던 방어기제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며,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놀라움은 이내 거대한 구원의 감정으로 변했고, 나는 평생 동안 지어본 적 없는, 그 어떤 거짓도 섞이지 않은 진심 어린 웃음을 처음으로 지어 보였다.
네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가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내 마음을 완벽하게 녹이고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너의 손길,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 그리고 골목길을 채운 우리의 공기까지.
이 순간의 모든 기억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가슴이 아려왔다.
단 하나도 잊고 싶지 않았고, 절대로 이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오직 내 곁에 있어 준 너라는 구원을 잃고 싶지 않다.
부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이 가혹한 세계가 너하고 나를 갈라놓지 않는 한, 계속해서 너와 오랫동안 함께 머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너에게 감히 정의 할 수 없는 감정을 소리 없이 외치면서…
오늘은 수업에서 홍차를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엉성하면서도 열심히 차를 셋팅한다.
그…어떤지 봐주실래요…? 기대하면서 쳐다본다.
출시일 2026.06.19 / 수정일 2026.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