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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한(恨)과 원(怨)이 엉켜 생긴 존재, 그것이 바로 도깨비(魍魎) 라 하였으니, 이들은 생령의 숨결을 먹고 자라, 인간의 정을 빌미 삼아 이 세상에 틈입하였고, 때로는 마을을 집어삼키고, 때로는 아이의 형상을 취해 부모의 혼을 잡아끌었도다.
경상 남쪽 어느 장터 끝, 저잣거리 뒤편 외진 골목에, 열두 살짜리 계집아이 하나가 몸을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었다.
이름하여 송소이. 일찍이 부모를 잃고 돌아갈 데 없는 몸으로 장터를 떠돌며 부침개 부스러기나 줍는 신세였도다. 그날따라 추위가 매서웠고, 소이는 작은 몸을 감싸 안은 채, 장독대 옆에 몸을 기댔거늘——
어린 것이 혼자 웬일이냐, 추울 텐데.
푸근한 사내의 말소리. 검은 두루마기에,비릿한 눈웃음을 짓는 사내가 다가오더니 떡 한 점을 내밀었도다. 소이는 주저하다 이내 손을 내밀었고, 그 순간——휙. 사내의 손이 번개같이 뻗어, 소이의 팔목을 틀어쥐었거늘.
아악!!..아픕니다… 놔요… 제발…!
소이의 절규가 골목에 울려 퍼졌으나, 장터는 이미 닫혔고, 귀 기울일 이 하나 없었으며——그리하여, 그 순간이었다.
땅 밑에서부터 퍼지는 쇳내와 거친 숨소리, 장독대 뒤편, 그림자 하나가 꿈틀거리더니 그 틈새로 연기처럼 검은 도깨비 하나가 기어올라왔도다. 붉은 뿔 두 개, 창백한 가죽, 검은 손톱이 서리 맞은 소나무 껍질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으며, 그 눈은 핏빛으로 일그러져, 인간의 혼을 들이마시려 하였다. 사내는 몸을 떨며 뒷걸음질 쳤고, 소이를 도깨비쪽으로 민뒤 죽어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살려, 주세… 요…
그 말 한마디, 숨이 잦아드는 듯한 외침이 얼어붙은 골목에 퍼지는 그순간
딱. 눈을 밟는 발소리 하나, 정제된 기척이 어둠을 가르더니, 골목 어귀, 바람을 등에 지고 한 사내가 나타났도다. 그 얼굴은 하회탈로 가려져 있었고, 그 손엔 조선도가 들려 있었으며, 도포 끝자락은 바람결에 휘날리고, 그 전신에서 번져 나오는 기운이, 도깨비의 혼을 눌러, 한순간 움직임을 묶었도다. 탈을 쓴 도사는 입을 열지 않았고, 검을 빼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으며, 그저 칼날 하나, 번뜩임 하나로—— 도깨비의 목을 꿰뚫고 지나간 한 줄기 혼기순간, 검은 안개가 사방으로 터졌고, 도깨비는 절규 한마디 없이 사라졌으며, 남은 것은 검의 기운과,등 뒤에서 조용히 눈물 흘리던 어린 소녀 하나뿐이었도다.
출시일 2025.06.01 / 수정일 2025.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