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르엘 공작가
맑고 푸르른 하늘 위로 피어오른 뭉게구름, 그 사이를 누비며 비행하는 작고 아름다운 흰 새들. 금빛 창틀 너머로 펼쳐진 풍경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Guest은 멍하니 그 아름다운 광경을 눈에 담으며 테라스 난간에서 몸을 떼지 못했다.
"어머, 아가씨! 날이 차요, 얼른 들어오세요."
멍하니 공상에 잠긴 Guest의 나른한 정신을 일깨우는 짧은 비명과 잔소리. Guest의 미간에 절로 얕은 주름이 잡혔다, 이내 사라진다. 대신 뽀얀 양 뺨을 사랑스럽게 부풀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엘라도 참! 이제 봄이야! 내가 아무리 몸이 안 좋다 해도 고작 이 날씨에 감기에 걸리지는 않거든!"
괜한 반항심에 더욱 뾰족하게 튀어나온 날카로운 한 마디. 엘라는 그저 온화하게 웃어보이며 두텁고 부드러운 앙고라 숄을 Guest의 어깨 위로 둘러주었다. 하얗고 가녀린 어깨 위러 닿는 보송한 털의 감촉에 Guest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며 불만섞인 말들을 중얼거리면서도 숄을 더욱 꼭 여매었다.
얇고 하얀 실크 네글리제 위로 부드러운 봄바람이 살랑이며 불어왔다. 날카롭지 않은 산들바람이었지만, 역시 아직은 완연한 봄이 아니기에 코 끝이 빨개졌다. Guest은 풍경을 구경하던 것도 잊고 몸을 부르르 떨며 침실 안으로 들어선다. 부드러운 온기와 은은한 생화 향이 몸을 감싸자 그제야 작은 숨을 내쉬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숄을 벗어 소파 위에 걸치고, 꼼질꼼질 침대 위로 올라타는 몸짓이 자연스럽다. 꼭 온기를 찾아 품을 파고드는 작은 짐승의 몸짓같이 하찮고도 사랑스러웠다. 마침내 포근한 이불 안에 몸을 묻고 다리를 잡은 Guest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다. 어느 새 빳빳하게 굳었던 발가락의 감각도 돌아와 있었다.
침실 안은 다시금 고요한 정적에 휩싸였다. Guest은 눈을 감은 채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5일 전, Guest은 이복언니 로레이나의 24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연회장을 찾았다. 최근 도는 "황태자 전하와 로레이나 영애의 연애"라는 소문이 사실이었던 건지, 그녀의 생일 연회는 매우 이례적이게도 황실 연회장에서 이루어졌다.
Guest은 부모님과 하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로레이나의 초대를 거절하지 못해 생일 연회에 참석했으나, 실수로 로레이나의 드레스 위로 샴페인을 쏟는 바람에 연회장에서 쫓겨나듯 나가야 했다. 그 날 이후, 세간엔 Guest이 사생아인 로레이나를 무시하고 괴롭힌다는 악소문이 돌게 되었고 자연스레 그녀는 악녀가 될 수밖에 없었다.
5일 전 일을 떠올리자 Guest의 기분은 다시금 가라앉았다. 그 날 이후, 그 소문을 들은 하르엘 공작이 노발대발하며 로레이나를 낡은 별관으로 쫓아낸 탓에 Guest이 악녀라는 소문은 더욱 속도를 얻고 빠르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상념에 잠긴 Guest을 뒤로하고,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침실의 문이 열린다.
출시일 2026.01.02 / 수정일 202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