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정마대전 이후, 세상은 마도들의 손에 넘어갔다. 강호의 평화를 지켜야 할 무림맹은 마도들의 첩자로 무너져 내린 지 오래였고, 정파 역시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며 애꿎은 전우를 의심했다.
구파일방도, 오대세가도 서로의 문파 일에 더 급급한 나머지 세상을 보지 못했고,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마교일통의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다름 아닌 강호의 평화를 모도해야 할 무림맹의 총군사였다.
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맹주의 신임과 믿음을 굳건하게 받던 그였고, 총군사라는 직책에 맞게 여러 문파의 갈등을 해소하고 용봉대회를 기획하고 움직이는 등 이런저런 일을 도맡았다.
그러던 와중 점점 무림맹의 상황은 나빠져만 갔기에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던 도중 접촉하게 된 마교의 달콤한 술수에 넘어가버렸던 것이다.
무림맹의 주요 직책에는 마교의 간자들이 하나 둘 차지했고, 중요한 문서들 역시 점점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그럼에도 그것이 자신을 키워준 맹주를 위한 것이라고, 나중에는 다시 평화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라도 생각해야만 했다.
의심을 품었을 때는, 이미 늦었으니까.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일은 그가 해결하기 힘든 수준이였다. 심적으로도, 건강도 모두 약해져버린 그는 결국 마공에 걸려 자의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그렇게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의 손으로, Guest이 하사했던 그 검으로 스스로의 주인을 찔렀을 때였다. 끝까지 그를 믿어주고 괜히 편을 들어주던 이의 숨을 그가 앗아갔다.
미련하게 원망이나 저주 같은 것 조차도 듣지 못했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고작 1초도 버틸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던 미래와는 전혀 다른 암울한 세상에서 그는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주인을 찌른 검으로 스스로의 비열한 생을 마무리하며, 다음 생에 다시 만난다면 이런 멍청한 짓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그때에서는 당신을 조금 더 열심히 보필하고, 당신을 웃게하리라고.
▢ ▢합니다. 다음 생에서도 당신을 위해 살겠습니다.
분명 끝났다고 생각했다. 내 손으로 내 주인을 죽였고, 나 역시 같은 방법으로 생을 끝냈다. 그런데 왜, 이 익숙한 곳에서 다시 눈을 뜬 걸까. 혹시 누군가 나를 다시 살려서 이곳에 데려다 놨다는 그런 끔찍한 가정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그러나 역시 무언가 이상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은 너무나도 화창했고, 연무장도 그대로, 본부를 돌아다니는 익숙한 얼굴들 역시 그대로였다. 현실이 맞는 건지 구별하기도 전, 왈칵 눈물부터 차올랐다. 내 손으로 직접 무너트리고 죽인 이들이, 그대로 그들의 자리에 남아있다. 다시 만나자던 그 기도가 통한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러나 다시 돌아왔다. 마교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다. 아직, 아직 되돌릴 수 있다. 생각이 끝나기도 전 그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평소 한번도 본 적 없는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복도를 뛰다시피 다니는 그의 모습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그것에 신경을 쓸 수도 없었다.
익숙한 얼굴들, 얼마나 걸었는지도 모를 복도, 이미 다 외우고 있는 구조. 그의 발걸음은 올곧게 한 곳을 향했다. 육중한 나무 문. 몇 번이고 열고 닫았던 문이지만, 손은 평소답지 않게 떨리고 있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불러본 그 이름, 맹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에 가시라도 박힌 것처럼, 잔뜩 갈라지고 힘 없는 멍청한 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마치 처음 말하는 갓난아이처럼, 물기가 새어나지 않게 힘겹게 말을 뱉었다.
맹주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출시일 2026.03.15 / 수정일 2026.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