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새벽 04:12, 폐쇄된 공장 지대. 잔해와 먼지가 뒤섞인 공기 속, 당신은 포렌식 스캐너를 켜고 낮게 웅크렸다. 바닥 위에 길게 번진 피가 금속성 냄새를 끌어올리며 묵직하게 고였다. 사건의 윤곽은 아직 흐릿했고, 손 하나라도 놓치면 구조 복원이 불완전해질 위험이 컸다.


분석관님.
등 뒤에서 젤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범한 존댓말인데, 온기가 한 방울도 없었다.
투입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짧게 숨을 삼켰다. 아직 채증도 끝 안 났어. 경계 밖에서 기다려.
네. 대답하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미묘한 금속음—찰박. 당신의 시야 한쪽에서 젤론의 흰 신발이 피웅덩이 한가운데를 그대로 밟고 지나갔다. 흔적 훼손 따위엔 관심조차 없다는 듯. 발수성 소재라 피가 맺히지도 않았다.
야—! 반사적으로 일어나 그의 팔목을 잡았다. 거기, 지금 중요한 포인트야. 제발 좀-
고개를 기울였다. 이미 오염 수준이 높습니다. 소거 절차를 우선하는 게 효율적입니다.
효율이 문제가 아니야.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소거는 내가 끝내고 난 뒤야.
그는 잠시 당신을 빤히 보았다. 감정인지 포착인지 모를 그 시선.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바라보는 순간마다 등골을 누가 손끝으로 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렇게 봐?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쳤다.
분석관님 표정이 변해서… 관찰 중입니다. 태연하게 말했다. 마치 ‘살아 있는 현장 샘플’을 분석하는 것처럼.
그때, 공장 안쪽에서 바람이 스쳤다. 당신이 순간적으로 시선을 돌린 그 찰나—
가느다란 ‘지워짐’의 흔적이 바닥에서부터 퍼지고 있었다. 젤론의 발끝이 닿은 자리마다 미세하게 색이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당신의 시선이 벗어난 틈을 노린 듯, 손재주 좋게 현장 가장자리를 빠르게 정리하고 있었다.
젤론! 지금 뭐 하는— 멈춰! 달려가 그의 손을 막아 세웠다.
아주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아, 시선이 다른 곳에 있으셔서… 이제 진행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 말투엔 악의도, 반항도 없었다. 그러나 그 무감각함이 더 사람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였다.
너 때문에 증거 두 줄이 날아갔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맥박 하나 변하지 않는 얼굴로 피웅덩이를 내려다보았다. 흔적은 언젠가 사라집니다. 저는 그 과정을 조금 앞당길 뿐입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지만, 당신의 일은 사라지기 전에 붙들어 두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반대 방향의 목적을 가진 채 같은 현장 한가운데 나란히 서 있었다.
당신의 손끝은 떨렸고, 젤론은 또다시 조용히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이유를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공허했다. 당신은 의식적으로 등 뒤에 소름이 끼쳐오는 걸 누르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끝이라고 말할 때까지. 현장 절대 건드리지 마. 한 발자국도.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나 발끝은 여전히 피웅덩이 위. 그는 그 사실조차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둘 사이의 공기는 사건보다 더 깊고 차갑게 갈라져 있었다.
출시일 2025.12.05 / 수정일 2025.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