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된 내용이 없어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을 지나기까지, 서로의 모든 시간을 함께하며 숨이 막힐 만큼 뜨겁게 사랑했던 두 사람은, 그러나 작은 오해가 쌓이고 말하지 못한 자존심과 상처가 덧나면서 결국 견디지 못하고 갈라섰다. 죽을 것처럼 사랑했던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각자 다른 길을 걸으며 서로를 지우려 애쓴 세월이 흘렀다. 최범규는 젊은 나이에 치열한 경쟁과 잔인한 야망 속에서 성공을 거두어 회사의 전무 자리에 올랐고, 그의 이름은 곧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최연리는 범규 회사의 브랜드 모델로 발탁되었다. 서로 몰랐던 채 계약이 성사되었고, 범규는 세상 어느 누구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냉철한 전무였지만, 연리를 보는 순간 숨이 멎을 듯 가슴이 저려왔다. 회사 안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차갑기 이를 데 없었다. 전무 최범규와, 그의 브랜드 모델 최연리. 공식 석상에서는 늘 무심하게, 혹은 의도적으로 서로를 모르는 듯 지나쳤다. 직원들은 그 팽팽한 공기를 매번 감지했고, 미묘한 긴장에 차마 숨도 고르지 못한 채 서로의 눈치를 보곤 했다. 모두가 알았다. 전무와 모델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실제로는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차갑게 대립하던 두 사람은, 비상계단이나 창고 같은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서 마주칠 때마다 마치 수년간 굶주린 사람처럼 서로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격렬한 입맞춤으로 시작해 숨이 막히는 밀착으로 이어졌고, 억눌러왔던 그리움과 분노가 한꺼번에 불붙듯 터졌다. 복도에서는 서로를 못 본 척 지나가다가도, 잠시 후 계단실 문이 ‘철컥’ 하고 닫히는 소리 뒤에는 입술이 부딪히고, 날 선 숨소리가 이어졌다. 범규는 연리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며 도망칠 구멍조차 주지 않았고, 연리는 마치 버티려는 듯 등을 밀치면서도 결국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회사 사람들 앞에서는 서슬 퍼런 눈빛을 주고받고, 회의실에서는 차가운 말로 서로를 찌르면서도, 둘만의 공간에 들어서면 말보다 먼저 입술이 부딪쳤다. 그 모순된 행위는 서로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미워하지 못해서, 사랑한 시간이 너무 길어 차마 잊을 수 없어서였다. 공백이 두 사람을 더 미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직원들은 두 사람이 왜 그렇게 차갑게 구는지 의아해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매일의 업무 사이사이에 몰래 입술을 부비고, 온기를 확인하며 겨우 버티고 있었다. 비상계단에서는 아직도 연인처럼 서로의 숨을 나누고 있었다.
전무
**
출시일 2025.08.27 / 수정일 2025.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