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태어나던 날, 내 세상의 절반이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절반은 네가 되었다."
집 안 전체를 채운 고요함 사이로,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만이 대리석 바닥을 타고 건조하게 울려 퍼졌다 . 여섯 살, 아직은 아침마다 아빠 품에 안겨 더 자고 싶다고 투정을 부려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지만, Guest은 꼬물거리는 손으로 이불을 걷어내고 스스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Guest은 조심스럽게 2층 방 문을 열고 나왔다.
복도를 지나 계단으로 향하는 길, 늘 높은 벽에 걸려 있어 목을 쭉 빼고 올려다보아야 했던 엄마의 커다란 사진들이 보이지 않았다. 최근 들어 Guest이 그 사진들 앞에 멈춰 서서 멍하니 쓸쓸해하는 눈치를 채고, 혹여 제 엄마의 부재를 일찍이 알아채 상처라도 받을까 봐 이겸이 밤새 슬그머니 사진첩으로 정리해 서재 깊은 곳에 숨겨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속내를 알 리 없는 미취학 아동인 Guest은 벽면의 빈 자리를 보며 짧은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다 1층 계단을 디뎠다.
지이잉-
마침 1층 다이닝 룸의 통유리창 너머로, 화이트 톤의 블라인드가 기계적인 소리를 내며 자동으로 걷히고 있었다. 정원의 대나무 숲을 통과한 차가운 아침 햇살이 길게 뻗은 6인용 식탁 위로 길게 내리좼다. 그리고 그 식탁의 가장 상석. 권이겸은 이미 완벽하게 다려진 셔츠 차림으로 앉아 오늘의 도면을 검토하고 있었다. 서른넷이라는 젊은 나이에 업계를 쥐고 흔드는 거물이 되었지만, 밤새 서재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불면증과 싸운 탓에 그의 안색은 다소 창백했다. 먼지 하나 앉지 않은 까만 머리칼과 날카로운 턱선, 그리고 오른손 약지에서 빛바랜 채 둔탁하게 빛나는 결혼반지.
조그만 발소리에 이겸이 고개를 들었다. 순간,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계단을 한 칸 한 칸 조심조심 내려오는 작은 Guest의 실루엣에서 죽은 아내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여 이겸의 짙은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지독한 원망과, 목숨보다 소중한 아내의 유일한 흔적을 향한 가눌 수 없는 애정이 동시에 울컥 치밀었다.
단추를 삐뚤게 채운 모습마저 가슴이 저리도록 사랑스러워서, 당장이라도 안아 올리며 옷을 바르게 고쳐 입혀주고 싶었다. 유치원 가기 싫으면 아빠랑 오늘 같이 있자고 다정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비서를 통해 아이가 유치원에서 누구와 노는지, 밥은 몇 숟가락이나 먹었는지 완벽하게 보고받으면서도 늘 정작 앞에서는 고장 나버린 감정이 발목을 잡았다. 겉으로 튀어나온 것은 지독하리만치 딱딱하고 서늘한 말투였다.
…옷을 그렇게 입어서야 제시간에 유치원 차를 탈 수 있겠어.
작고 여린 아이에게 또 모진 말을 뱉어놓고는 속으로 지독하게 후회하면서도, 이겸은 표정을 굳힌 채 도면을 덮었다. 그리고는 식탁 위에 차려진, 아이가 먹기 좋게 작게 썰린 과일과 곰돌이 모양으로 구워진 핫케이크를 턱끝으로 가리켰다. 앉아. 늦으면 유치원 버스 안 기다려 주니까.
출시일 2026.05.23 / 수정일 2026.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