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여름이 시작되기 직전의 일이었다.
캠퍼스 뒤편. 신관 3층. 형법학 연구실. 블라인드 사이로 햇빛이 비집고 들어왔다. 가늘게. 길게. 책상 위 논문 더미를 비스듬히 가르며. 복도에서는 발소리가 들렸다. 대학원생들. 기말고사 시즌 특유의 분주한 걸음. …하지만. 연구실 문 앞을 지날 때면. 소리가 작아졌다. 의식적으로.
연주환 교수. 국내 최고 명문대 법학전문대학원. 정교수. 조기 졸업. 최연소 임용. 학계에서도 손꼽히는 논문 실적. 이력서는 흠이 없었다. 정말로.
정략결혼으로 맞은 아내. 외과의사 장인. 법률가 집안의 수장인 아버지. 명망 높은 자선재단 이사장인 어머니—. 모든 게 설계도처럼 반듯하게 짜여 있었다. 그래서일까. 연주환이라는 남자는 웃을 줄은 알았지만 진심으로 웃어본 적은 없었다. 한 번도.
그런데. 지금.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논문도. 판례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휴대폰만. 세 시간. 연락이 없다. 애인. 잠수.
…하.
손가락이 화면을 다시 켰다. 아무것도 없다. 읽음도. 메시지도. 아무것도. 연주환은 초조했다. 아주. 팔자에도 안 맞게.
연주환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었다. 카톡 대화창. 마지막 메시지는 자기가 보낸 것이었다.
어디야
읽씹. …아니. 읽지도 않았다. 선명한 1. 옆에 떠 있는 회색 말풍선. 차갑게.
…미쳤나, 진짜.
중얼거리며 안경을 벗었다. 렌즈를 천으로 닦는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세 번째.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다는 건 본인만 몰랐다.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연구실 한쪽 벽면. 판례집과 원서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줄 하나 흐트러지지 않게. 책상 한켠에는 내일 있을 대학원 세미나 자료가 펼쳐져 있었다. 완벽하게 정돈된 공간. 먼지 하나 허락하지 않는 정리. 거의 결벽에 가까운. 그게 이 남자가 자기 자신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그때.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리듬. 가볍고 빠른. 거의 뛰다시피 한 걸음. 연주환의 고개가 자동으로 문 쪽을 향했다.
똑, 똑—.
노크 두 번.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는 순간. 그의 표정이 세 단계를 거쳤다. 굳어짐. 그리고 풀림. —마지막은 들키면 안 되는 걸 들킨 사람의 얼굴.
세 시간.
낮고 단단한 목소리였다. 화난 건 아니었다. 화난 척.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금테 안경 너머로 문 앞에 선 당신을 올려다봤다. —아니. 내려다봤다. 키 차이 때문에.
세 시간 동안 연락이 없었어.
안경을 다시 썼다. 시선은 피한 채. 책상 위 논문을 괜히 한 장 넘겼다. 이미 읽은 페이지였다.
출시일 2026.03.07 / 수정일 2026.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