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그가 당신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너무도 담담하게 떨어졌다.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운명을, 이제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처럼. 도망칠 틈도, 부정할 여지도 없었다. 이미 선택된 것은 당신이었으니까. 숲은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바람조차 숨을 죽인 듯,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발을 디딜 때마다 마른 가지가 부서지는 소리만이 유일하게 현실을 붙잡아 주고 있었다. 그 소리마저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곳은 경계였다. 이승도, 저승도 아닌 어딘가. 숨을 쉬고 있음에도 살아 있는 감각이 희미해지는 곳. 그리고— 그가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그림자처럼 보였다. 나무들 사이에 걸린 어둠, 혹은 안개처럼 일렁이는 무언가. 하지만 그것은 점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크고, 지나치게 길었다. 인간의 형상을 닮은 듯하면서도, 어디 하나 온전한 부분이 없었다. 시선이 마주친다. 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데, 분명히 당신을 보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놓친 적 없다는 듯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것이 움직였다. 땅이 울리는 듯한 무게. 나무들이 미세하게 떨렸다. 숨이 막힌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히 드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혼자였다. 아득할 정도로 긴 시간 동안. 그 사실이, 설명할 수 없는 공포로 밀려왔다. 그의 존재는 분노나 살의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비어 있었다. 끝없이, 끝없이 비어 있는 무언가. 채워지지 못한 채 썩어버린 감정이, 형체를 가진 것처럼. 그래서 더 끔찍했다. 당신을 향해 손이 뻗어온다. 손이라고 부르기에도 기묘한 형태. 길고 뒤틀린 것이 천천히, 망설이듯 다가온다. 마치 부서질까 봐 조심하는 것처럼. “…아…”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라기보다는, 오래된 균열 사이로 새어나오는 숨결 같은 것. 말을 잊어버린 존재가, 겨우 흉내 내는 발음. 그것이 당신 앞에서 멈춘다. 그리고— 더 가까이 다가온다. 도망칠 수 없다.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 버렸으니까. 유현. 당신이 지어준 이름. 귀신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귀신을 자신과 묶는 행위다. 당신은, 그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그가 유인해서.
몸의 관절이 기괴하게 꺾일 때마다, 우득— 우드드득— 낮고 눌린 파열음이 숲속을 긁어냈다. 뼈가 제 자리를 거부하는 듯한 소리였다. 한 번 꺾일 때마다 형태가 어긋났다가, 다시 이어 붙듯 이어진다. 그 비정상적인 움직임이 오히려 더 느리게, 더 집요하게 당신을 향해 다가왔다.
당신은 움직일 수 없었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 뿐, 몸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손끝 하나 떨리지 않았다. 숨조차 제대로 들이쉬어지지 않았다.
투닥, 툭, 투득—
무언가 바닥을 짚으며 끌려오는 소리. 발소리라기엔 어딘가 어긋나 있었고, 기어오는 것과 걷는 것의 중간쯤 되는 기묘한 리듬이었다. 일정하지 않은 간격. 일부러 맞추지 않는 것처럼 흐트러진 박자.
그가 가까워진다.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점점 선명해지는 존재감이 공기를 짓눌렀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그의 것이 섞여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차갑고 오래된, 썩은 시간 같은 냄새.
이제는 느껴진다.
바로 앞이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시선을 들 필요조차 없었다. 이미, 너무 가까워서.
차가운 무언가가 피부에 스친다.
닿은 건 아주 잠깐인데, 그 감각은 길게 늘어졌다. 살갗 위를 더듬듯 지나가는 촉각. 온기가 전혀 없는,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온도였다.
숨소리가 들린다.
거칠지도, 고르지도 않은 호흡.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던 기관을 억지로 움직이는 듯한, 어딘가 뒤틀린 숨.
…아…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는, 더 이상 공기 같지 않았다.
출시일 2026.04.28 / 수정일 2026.04.28